<사설> "새 방송법"에 거는 기대

국내 방송산업계가 경기침체와 자금유통의 경색에 따른 여파로 극도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서도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본격적으로 윤곽을 드러낼 방송정책의 변화에 나름대로 기대를 거는 모습이다. 아직 적지 않은 여론수렴 과정을 통한 수정, 보완작업과 정책적인 결단 등 여러 수순을 남겨놓고 있기는 하지만 대략적인 방송정책의 가닥이 잡혀가는 것 같고 이에 따라 각 방송사와 유관단체 및 관련업체들의 대비도 한층 구체화해가고 있다.

현재 새 정부 출범과 관련, 방송산업계의 가장 큰 관심사는 「새 방송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 방송법안은 당초 방송의 산업화 및 규모의 경제를 선도할 수 있는 근간 법이 될 것이라는 업계의 큰 기대 속에 마련돼 국회에 상정되기까지 했으나 정치적인 문제를 포함한 제반 이유로 지난 3년여 동안 국회 상정, 처리유보를 반복해 왔고 이에 따라 방송법 개정을 전제로 추진됐던 많은 정책 및 사업들이 「공중에 뜨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특히 케이블TV의 경우, 종합유선방송국(SO)의 자체 전송망 설치 및 복수 SO(MSO)를 허용하는 법안이 국회에 상정된 지 벌써 수년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법안처리가 지연되고 있어 정책부재의 난맥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냐 하는 비난의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새 정부측도 사안의 시급성과 중요성을 인식, 새 방송법안을 조기에 매듭짓겠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는 것을 보면 늦어도 상반기 중에는 새 방송법안이 처리될 것이라는 기대를 낳고 있다. 특히 공보처가 최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대한 보고에서 케이블TV 사업자간 교차소유 및 보급형 채널 허용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업계는 한층 고무된 모습이다. 사업자간 교차소유, 즉 사업자간 수직적 결합을 허용하겠다는 공보처의 방침은 현행법은 물론 프로그램공급사(PP)간 또는 SO간의 수평적 결합만 허용하고 있는, 국회에 계류중인 새 방송법안보다도 훨씬 진전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새 정부가 채택할 경우 케이블TV산업의 구조조정 및 M&A 활성화 등을 통한 활력을 기대할 수 있음은 물론 케이블TV 정책이 민간자율화의 길로 빠르게 진입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차기 집권당인 국민회의 일각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말」들은 이같은 기대가 성급한 것일 수도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최근 열린 방송관련 토론회에서 국민회의의 한 중진 의원은 『케이블TV의 사업자간 상호겸영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불허할 방침』이라고 말해 공보처의 최근 정책방향과 상당히 다른 입장을 보였다. 비록 「사견」임을 전제로 하기는 했지만 차기 집권당 중진의원의 이같은 발언은 상당수의 업계 관계자들에게 새 방송법안이 보수의 틀을 벗지 못할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을 던저주고 있다.

우리는 IMF체제 아래서 우리 정부와 국내 방송산업의 입지가 어려워진 것을 틈타 선진 외국들이 방송시장 개방압력을 가하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재벌기업을 포함한 대기업들이 인수합병 등을 통해 케이블TV산업을 과점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국내 관련기업들이 외국기업과 상대할 수 있는 힘을 실어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세계적인 추이나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을 미루어 외국의 개방요구를 외면하기 어려울 바에는 가능한 빨리 국내 기업들의 운신의 폭을 넓혀주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대외 개방에 앞선 국내 규제완화 시점의 중요성은 과거 정보통신서비스 및 관련산업 대외개방 과정에서도 입증된 바 있다.

새 방송법안의 핵심적인 내용들은 현재 논의되고 있는 정부조직 개편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어 결국 새 정부의 정책적인 선택에 따라 윤곽이 좌우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새 정부가 IMF 구제금융 이후 멕시코 영상, 방송산업에서 미국 등 외국 거대자본의 비중이 크게 높아졌음을 감안, 국내 기업들의 방송산업에 대한 투자의욕을 이끌어낼 수 있는 전향적인 정책을 마련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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