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새설계] 한국HP 최준근 사장

지난 84년 미국 휴렛패커드(HP)와 삼성그룹이 합작해 설립한 한국휴렛팩커드는 지난해 국내진출 사상 처음으로 1조원에 달하는 매출실적을 기록했다. 이는 국내에 진출한 30여개 외국계 컴퓨터업체로서는 처음이다. 국내 진출한 외국계 컴퓨터업체중 명실상부한 최대업체로 부상한 한국HP는 올해를 제2의 도약 원년으로 삼고 있다. 한국HP는 계측기, PC 및 주변기기, 중대형컴퓨터 및 솔루션 공급사업에서 축적한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정보인프라 구축 및 선진화에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특히 한국HP는 국제통화기금(IMF) 한파로 인해 정보기술(IT)투자 방향수립에 혼선을 빚고 있는 공공, 금융, 제조, 유통, 통신 등 국내 전분야 기업에 올바른 전산투자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이들이 21세기 선진기업으로 도약하는 데 기여한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나아가 한국HP는 미국 본사인 HP가 경제 불황을 딛고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선정되게 된 경험과 노하우를 국내기업에 전수하는 방안도 적극 모색하고 있다. 최준근 한국HP 사장을 만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HP의 경영철학 「HP Way」에 기반을 둔 한국HP의 올해 사업방침을 들어봤다.

<대담=컴퓨터산업 조인 부장>

-우리나라가 IMF체제로 들어서면서 그 어느해보다도 난관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먼저 국내 경영환경이 어떻게 바뀔 것으로 보는지요.

▲난관을 풀어보려는 자구적인 노력을 시도하기도 전에 그동안의 안일했던 경영으로 이미 속수무책인 기업들도 있을 것이고 방법을 강구해서 노력하면 위기를 무사히 넘길 기업도 있을 것입니다. 현재 경영환경이나 사업환경은 아시다시피 예측할 수 없고 거의 모든 기업에 매우 불리한 상황입니다. 모든 것이 정부와 국민 모두가 어떻게 노력해서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경영환경이 정해질 것입니다. 다행히 새 정부는 여러 방면에서, 특히 정보산업 분야에서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의 육성을 위해 확실한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고 있고 우리나라는 국가비상시에 뭉치고 역량을 발휘하는 국민기질을 지니고 있으므로 고통기간을 현명하게 대처하고 힘을 합한다면 모든 것이 긍정적으로 풀려나가리라고 믿습니다.

-한국HP는 이처럼 급변한 경영환경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지요.

▲갑자기 일어난 국가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대처할 방안을 짜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경영차원에서는 불필요하다거나 줄여도 크게 지장이 없다로 생각되는 부분은 나름대로 삭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외부장소를 빌려 하던 회의를 회사 내에서 할 수도 있고, 전사적인 절약캠페인을 통해 낭비를 줄이는 방법도 있습니다. 다행히 직원들이 국가위기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현명한 판단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으로 봅니다.

-올해 역점을 두고 추진할 사업분야는 무엇인지요.

▲올해 한국HP는 국내 IT산업계의 최대 현안으로 부각되고 있는 「2000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최대한 역점을 둘 계획입니다. 특히 시스템 판매와 컨설팅시에 「2000」이라는 숫자와 관련해 대두될 문제에 대해 고객들에게 충분히 인식시키고 과거 판매한 제품(2000년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출시한 제품)에 대해서는 사전조사를 충분히 해 2000년 문제가 발생하게 하지 않도록 이를 프로젝트화해 추진할 것입니다.

-최근 외국의 컴퓨터업체들이 국내업체와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국내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는데 이에 대한 한국HP의 입장과 대응 전략은 무엇인지요.

▲PC사업을 중심으로 할 계획은 현재 없습니다. 왜냐하면 외산PC의 점유율이 국내시장에서 줄어들고 있고 현 경제여건으로 판단할 때 합작투자가 과연 성공할는지 의문이 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기적으로 적절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으며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상호 우호적인 협력 파트너가 나타난다면 이에 대해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한국HP는 지난해 조직개편을 통해 중대형컴퓨터 사업과 PC 및 주변기기 사업을 통합, 고객중심 조직으로 개편했는데 이를 운영해본 결과 장, 단점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요.

▲지난해 11월에 조직을 개편하고 이제 2개월 가량 지났기 때문에 아직 장, 단점을 언급하기에는 시기상조입니다. 두 사업부문은 긴밀한 협조체제를 유지해야 하며 고객 위주의 영업을 시도하기 때문에 개편전보다 훨씬 나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특히 그동안 잠재돼 있던 두 사업부문의 장점이 상승효과를 낼 것으로 봅니다. 고객을 중심의 영업방식으로 조직을 개편했기 때문에 당연히 고객입장에서는 이전보다 다양한 제품정보와 솔루션을 제공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시간이 절약되는 등 만족스러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달러 대비 원화의 가치하락으로 한국HP와 대리점(협력업체)의 판매부진 및 경영여건 악화가 예견되고 있는데 어떤 방책이 있습니까.

▲모든 기업이 이렇다 할 대책없이 급속한 원화절하의 상황을 무방비상태에서 맞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없는 상태며 한국HP도 연구중입니다.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면서 한국HP는 기존 협력업체들과의 협력 및 지원관계를 더욱 돈독히 해 협력업체들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비가 온 후 땅이 더욱 굳어지듯이 어려운 고비를 통해 한국HP를 더욱 신뢰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할 것입니다.

-IMF라는 초유의 시련을 겪고 있는 국내기업들은 대대적인 구조조정이란 과제에 직면하고 있는데 이와 관련해 「HP Way」로 알려진 미국 HP의 경영전략이 국내기업의 벤치마크 대상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이를 토대로 국내기업에 조언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HP는 미국의 정평있는 경제주간지 「포춘」이 선정하는 컴퓨터부문 「가장 존경받는 기업」에서 수년간 계속 1위를 고수해 왔습니다. 이에 대한 평가기준은 매출액뿐만 아니라 기업 재무관리의 건전성, 혁신성, 종업원에 대한 배려 및 기업의 사회기여 등 다각도로 측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장 존경받는 기업」 1위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는 HP가 얼마나 건전하게 경영을 하고 있고 종업원들과 사회를 위해 공헌하고 있는가를 증명해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포춘」의 순위가 증명해주듯이 HP는(한국HP 포함) 비즈니스 리엔지니어링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별도의 구조조정을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즉흥적이고 한때의 위기를 넘기기 위한 구조조정은 장기적으로 볼 때 성공할 수 없다고 봅니다. 구조조정이 끊임없이 계속될 때 경쟁력을 갖추게 되고 성장할 수 있는 것이지요.

또한 HP는 인본주의 경영, 즉 종업원들에 대한 배려를 통해 그들에게 최적의 환경을 제공해서 그들이 업무에 대한 책임의식과 주인의식을 갖고 창의성을 최대한 발휘해 업무에 임하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을 경영이념으로 삼고 있습니다. 또 HP는 경기가 좋을 때나 좋지 않을 때나 마구잡이식의 고용창출을 피하고 계획적이고 효과있게 인력자원 관리를 해오고 있는데 이것을 국내기업들이 본받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원을 생산도구로서보다는 인간적인 면에서 배려, 불경기때 불가피하게 부서를 폐지할 때에도 그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만듭니다. 또 회사차원에서 이에 대한 배려방안을 세워놓기 때문에 사원들은 심리적인 불안감을 갖지 않고 있으며, 이에 따라 잠재적인 기업손실도 발생하지 않고 있다고 봅니다.

-HP가 한국HP를 통해 국내 주요 전자제품의 구매를 적극 추진하고 있는데 이 국제구매본부(KIPO)의 올해 활동내역에 대해 설명해주셨으면 합니다.

▲한국HP는 KIPO를 통해 전자 완제품이나 부품 등을 국내시장에서 구매한 후 전세계에 있는 HP공장으로 수출해 지난 93년에는 정부로부터 「1억달러 수출의 탑」을 수상하는 등 한국 수출산업과 국가경제에 크게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수출품목은 모니터(HP가 필요로 하는 공급량의 약 50% 가까이를 한국에서 구매하고 있음), 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 LCD), D램 및 마스크롬 등 반도체, PCB, CD롬 드라이브 및 하드디스크 드라이브(HDD) 등입니다.

이는 한국HP가 국내에 판매하는 컴퓨터 물량보다 훨씬 큰 규모입니다. 지난해에는 4억5천만달러 상당의 직수출과 미국HP가 직접 구매해가는 간접수출을 합해 총 11억달러 정도를 수출했습니다. IMF시대를 맞은 올해 한국HP는 수출에 더욱 힘써 5억달러 상당의 직수출을 할 계획입니다.

-불황기 전산투자와 관련해 국내 주요기업 내에서 적극적인 투자확대론자와 축소지향적 투자론자 사이에 논쟁이 일고 있는데 이에 대한 견해는 어떠신지요.

▲불황이기 때문에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든가 아니면 축소해야 한다든가라는 견해중 한 방향을 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에 모순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전산투자를 하게 되면 당장에는 비용으로 처리되지만 결과측면에서 볼 때 향후 생산성 향상을 가져오게 돼 궁극적으로는 기업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말그대로 「투자」가 되는 것이지요. 경쟁력은 하루아침에 축적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투자해 차츰 경쟁력을 갖추는 토대를 만드는 것이 장기적인 안목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는 각 기업의 경영상황에 비춰 판단할 문제라 여겨집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디에다 투자해서 어느 정도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가를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시각을 갖고 투자하는 것이지요. 투자하는 정도와 시각은 산업별로 약간씩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금융산업에 있어서의 전산투자는 시급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는 바로 생산성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한국HP는 그동안 국내 연구소, 대학 등의 연구, 개발 지원을 위한 갖가지 사업을 벌여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올해 이와 관련된 주요사업이 있다면 밝혀주십시오.

▲한국HP는 지속적으로 대학이나 연구기관, 시민단체에 첨단장비와 제품을 기증해 그들의 연구활동에 보탬이 되고자 지속적으로 노력해왔습니다. 또한 지난 96년에는 정부, 미디어, 학계 및 산업계가 공동으로 참여했던 인터넷 학교정보화 운동에 자금 및 장비를 기증했고, 97년에는 정부기관에서 추진한 「인트라넷 환경의 중소기업용 전사적자원관리(ERP) 표준모델 개발」을 지원해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돼 있는 우리나라의 중소기업 정보화 수준의 효율적 향상을 가져오는 데 이바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려운 환경이지만 올해에도 지난해 수준의 지원은 계속할 계획입니다.

-끝으로 미국 본사의 지난해 경영실적은 어떤지요.

▲미국HP는 지난 97년 회계연도에 4백28억 9천5백만달러 상당의 매출액을 기록했으며 이는 96회계연도의 실적인 3백84억2백만달러보다 11.6% 성장한 것입니다. 매출액중 컴퓨터부문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80%이며 매년 그 비율이 증가추세에 있어 세계 컴퓨터업계 3위 자리를 뛰어넘어 정상의 위치로 도약할 것으로 봅니다.

<정리=이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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