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316)

방금 전까지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여인의 시체가 놓여 있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깨끗한 침대. 단순하면서도 깔끔한 실내, 특이한 것은 대형 모니터와 컴퓨터뿐이었다.

또한 자살인지, 타살인지, 심장마비로 죽었는지도 확인할 수 없는 여인의 흔적이 남아 있을 곳은 컴퓨터뿐이라는 생각이었다.

김지호 실장이 컴퓨터를 바라보며 건네는 말에 이미 검증이 끝난 현장을 지키는 경찰관이 기운 없이 대답했다.

『컴퓨터요? 별 문제가 있겠습니까. 데이터만 만지지 마십시오.』

파워 ON, 롬바이오스 체크, 램 체크, 드라이브 확인, 시스템정보출력, 윈도로 부팅, MS DOS모드, DIR/S.

보통 컴퓨터가 아니었다. 용량이 크고 속도가 매우 빠른 컴퓨터로, 일반인들이 쓰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전원을 켜고 난 후 내부의 프로그램을 확인할 때까지의 작동은 일반 컴퓨터와 다른 점이 없었다.

어? 김지호 실장은 짧은 신음소리를 냈다.

많은 프로그램과 파일이 있었지만, 일일이 다 파일을 열어볼 수는 없는 일이었기에 특별하다고 판단되는 파일 하나를 열어보면서 깜짝 놀란 것이다. 파일 하나에 외부 장치가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별도의 전화회선과 인터넷을 위한 전용회선 외에 일반 컴퓨터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외부 디바이스를 컨트롤할 수 있는 장치 하나가 더 설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컴퓨터 배선반.

컴퓨터로 들어오고 나가는 외부회선이 모여 있는 곳. 김지호 실장은 컴퓨터로 인입되고 빠져나가는 회선을 일일이 확인했다. 그중에 하나가 창문 쪽으로 빠져나와 있었다.

창문. 김지호 실장은 그 회선을 따라 창문 쪽으로 다가섰다. 전망이 좋았다. 북한산과 북악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까맣게 타버린 케이블이 자꾸만 눈앞에서 어른거리기 때문일까, 인왕산 쪽에 걸린 태양이 검붉은 불길로 이글이글 타는 듯했다. 광화문 네거리도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도로 한복판 맨홀에서는 통신케이블 복구작업이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통신케이블을 감았던 빈 드럼이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는 것이 보였다. 종각 쪽은 물론, 시청 쪽과 광화문 쪽, 서대문 쪽까지 바라다볼 수 있었다. 누군가가 죽었다는 것을 잊을 정도로 전망이 좋았다.

컴퓨터에서 빠져나온 회선은 창문의 위쪽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유난히 큰 젖가슴과 도드라진 둔부에 때가 타 윤이 반질반질 나는 테라코타가 창 옆으로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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