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특집Ⅱ-21세기를 준비한다] 문제는 사람이다

21세기는 정보사회다. 이 말은 너무 진부한 화두지만 여전히 효력을 지니고 있다. 많은 미래학자들이 21세기를 하나같이 정보사회로 규정하고 있다.

정보사회는 거역할 수 없는 커다란 시대적 흐름이며 정보의 생활화가 불가피한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산업혁명시대가 그러했듯이 정보통신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갈라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21세기 정보사회로의 변화는 사회전체의 총체적인 구조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의 변화는 과거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의 변화속도보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정보사회는 정보가 유력한 자원이 되고 정보의 처리, 가공에 의한 가치생산을 중심으로 발전해가는 사회다. 20세기의 산업사회는 고도로 분업화된 개인의 단순노동에 의해 성취되는 대량생산의 원리가 적용됐다. 반면 정보사회에서는 지식이 가장 큰 구성요소로 되어 정보의 생산, 처리, 유통에 종사하는 지식산업이 크게 확장된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산업사회에서는 경제력이 권력의 중심이었으나 지식정보사회에서는 정보, 지식기술력이 권력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산업혁명으로 시작된 20세기의 산업사회는 마감되고 21세기에는 정보사회로 접어들면서 무형의 지식과 정보가 중심이 되는 새로운 형태의 시대로 이행할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

정보사회의 도래에 대비한 우리의 준비는 제대로 되어 있는가. 이같은 질문에 대한 답은 명쾌하지 못하다.

우리는 미래사회를 준비하는 교육체제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적합한 인력을 양성하지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사회에서는 멀티미디어 콘텐츠 등을 중심으로 한 소프트웨어산업과 정보통신산업이 각광받을 것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일반산업체나 정부부처, 교육기관 등은 이 부문에 대한 인력을 도외시해 왔다.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있는 현 시점에서 보면 정보통신산업의 급성장에 따라 정보통신분야에 종사하는 인력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96년말 현재 정보통신산업체에 종사하는 인력은 약 52만명. 여기에 정보인력을 포함한 포괄적 의미의 정보통신인력은 약 85만명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처럼 정보통신인력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신규 인력에 대한 수요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향후 5년 동안 정보통신분야에서만 47만2천명의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같은 신규 수요에 비해 인력공급이 뒤따라주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2002년까지 정보통신분야의 신규 공급인력은 43만8천명으로 약 3만4천명의 누적 부족분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정보화부문에서 인력부족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보통신부문의 인력을 중저급(학사 이하)과 고급(석사 이상)으로 나누어 볼 때 고급인력의 부족이 두드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분야의 산업을 이끌어갈 석, 박사급의 고급인력이 태부족하다는 것이다. 주요 중저급 인력수요의 누적 부족분은 2002년까지 약 2만3천명이며 고급인력은 약 1만1천명이다.

2002년까지의 중저급 인력수요 부족분은 같은 기간의 신규 수요 인원의 5.1%에 불과한 반면 고급인력의 부족분은 무려 42.8%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문제는 인력부족과 함께 인력수급에 있어서 극심한 불균형을 보일 것이라는 점이다.

정보통신기기와 소프트웨어부문에 각각 3만5천명과 9천8백명의 부족이 발생하는 반면 정보통신서비스부문은 1만명 이상 초과 공급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인력의 질적인 측면 및 효율적 이용에서도 산업체 수요를 충족시키기에는 크게 못미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 96년말까지 교육용 컴퓨터의 보급은 1만4백2개교에 33만7천4백대에 불과하다. 이 중 386급 이하 기종이 전체의 78.1%나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교실에 멀티미디어 기자재를 갖춘 학급은 96년말 현재 전 학급의 2%인 4천39학급에 불과하다. 이처럼 실험실습 기자재가 낙후되고 교수요원이 부족한 데다 실습현장경험까지 없는 이론위주의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어 학교에서 배출되는 학생들의 질적 수준은 낮을 수밖에 없다.

아울러 우리나라 대학의 인력양성은 선진국에 비해 교수나 연구비 등에서 아주 취약한 상황이다. 서울대의 교수 1인당 학생수는 96년 현재 21.8명으로 이 가운데 정보통신분야 교수 1인당 학생수는 34.5명에 달하고 있다. 반면 일본 도쿄대 공학부의 경우 교수 1인당 13명, 미 MIT공대는 10명에 불과하다.

OECD보고서가 우리나라 대학에서의 연구현황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93년 우리나라 전체 연구비 지출 중 7.2%만이 대학에 쓰였고 21.3%가 정부출연연구소에, 71.5%가 산업체에 쓰였다. 연구비 지출이 아주 불균등하게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93년 박사학위 소지자의 73.6%가 대학에 있고 17.7%가 정부출연연구소에, 8.7%만이 산업체에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기존 인력에 대한 재교육도 미흡하다. 정보통신분야는 기술혁신의 속도가 매우 빨라 이를 제대로 습득하고 활용하기 위한 기존 인력의 재교육이 절실하다.

중소기업의 경우 교육훈련비 및 시간적 부담으로 재교육을 수행하기에 특히 어려움이 많다.

여성인력의 경우도 그 중요성에 비해 활용도가 낮으며 여전히 사장되고 있는 부분이 크다.

군입대자, 청소년 등을 대상으로 한 정보화 및 정보통신교육이 필요하나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무엇보다도 학교교육의 부실화가 그대로 산업체나 연구소에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들이 21세기에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소프트웨어 관련인력이 태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LG그룹은 제품의 복합화, 디지털화, 멀티미디어화의 진전에 따라 제품에 있어서 소프트웨어의 내재성은 날로 증대되고 있는 데 불구하고 전통적으로 제조업 중심의 기업문화를 바탕으로 경영성과를 축적해옴으로써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육성하는 제도나 조직풍토 측면에서 취약한 실정이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기업의 연구소도 97년 3천개를 돌파할 정도로 늘어나고 있으나 취약하기는 마찬가지다. 한해 12조원을 기술개발에 투자할 정도로 민간연구소의 비중은 매우 크지만 아직도 우리나라 민간연구소의 기술개발 능력은 짧은 연구역사와 경험부족으로 선진국에 비해 많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핵심기술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많은 기업들이 최근 들어 기술개발의 거대화, 복합화, 시스템화 현상에 따라 단일기업 차원에서 모든 기술개발을 수행하지 않고 핵심기술은 자체 개발하고 그밖의 기술은 외부조달(아웃소싱)한다는, 이른바 선택과 집중의 기술개발 전략을 수립해 시행하고 있다.

산기협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은 필요한 핵심기술의 21.8%를 해외기업으로부터 기술도입해 해결하고자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업이 갖고 있는 핵심기술 역량이 떨어져 전략적 제휴가 용이치 않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기업이 세계적인 수준을 확보하고 있는 기술은 반도체메모리 등 손꼽을 정도다. 기업간 전략적 제휴가 대등한 기술력을 보유할 때 가능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세계적 수준의 핵심기술을 보유하지 않고는 기술의 외부조달 전략은 자칫 실패로 끝날 수 있다.

최근 수년간 첨단기술 획득을 목적으로 해외기업을 인수했으나 고전하고 있는 우리기업의 사례는 이를 입증하고 있다. 핵심기술력의 부족은 기업연구소가 선택할 수 있는 기술개발 수행범위를 한정시키고 세계적인 경쟁시대에의 대응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게 한다.

다음으로 연구소와 사업부문의 연계체제가 제대로 확립돼 있지 않다. 90년대 소개된 제3세대 R&D전략에서 연구소와 생산, 마케팅부문간의 협력이 강조된 이후 기업연구소는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생산이나 마케팅부서의 경우 형식적으로 참여해 이러한 연계노력이 무위로 돌아가는 경향이 많다. 이는 연구개발활동이 기업의 타부문활동에 비해 우위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투자 우선순위에서 뒤진다는 문제와 통한다.

아직도 많은 기업은 R&D활동을 미래를 위한 투자라기보다는 생산제조, 판매활동과 동일한 인식으로 투입비용만큼의 단기적인 성과를 기대하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과거에 비해 상당히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R&D투자보다는 공장자동화나 시설투자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고 자체 개발보다는 기술도입을 통해 기술을 확보하는 데 관심이 큰 면도 있다.

연구소가 신제품을 개발해 시장에 출시할 경우 영업부문에서 경험이나 능력이 부족한 직원을 배치함으로써 연구성과를 사장시키는 경우도 종종 지적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최고경영자가 기술의 중요성을 인식해 전 사업부서를 장악하고 업무를 추진해야 하지만 최근 경영상태가 악화되면서 최고경영자의 의지가 기술개발보다는 영업쪽에 치중되는 것이 현실이다.

국내업체들의 기술부족과 함께 세계적인 기업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신뢰와 협동이 필요하나 아직도 우리기업은 외부와의 협력에 인색하다.

연구소 내부의 협력은 최근 창조를 중시하는 연구분위기와 조직의 재편과정에서 많이 개선되고 있으나 기업간의 협력시 이러한 불신현상이 많이 나타난다.

대기업은 중소기업의 부품기술이 취약하기 때문에 이들이 개발한 제품을 양산제품에 적용할 경우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을 우려해 선진국 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상존한다.

중소기업은 대기업 연구원들이 핵심설계능력의 부족으로 기술도입처의 사양서를 모방하면서 이에 맞도록 중소기업에 개발을 강요하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도 이를 적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대기업들도 외국기업과는 제휴를 적극 추진하면서도 국내기업과의 제휴는 제대로 추진하지 않고 있다.

이같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정보사회에 대한 대비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를 고치고 하루 빨리 인력양성에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학교와 사회, 기업들이 모든 부문에서 기존의 분위기를 쇄신해야 한다.

단기적으로 인력양성을 위해 우선 학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양질의 전문인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선 정보통신 특성화 학교 중에서 우수한 학교를 시범학교로 선정, 지원해야 한다.

특히 전문경험과 지식을 가진 경력자들로 구성된 교수요원을 풀제로 운영, 대학과 기업들을 연결함으로써 보다 실용적인 교육환경을 조성하는 데 주안점을 두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한 대학의 기초연구를 지원하기 위해선 정보통신분야의 연구과제를 선정, 지원해야 한다.

대학 및 전문대의 정보통신과 관련된 창의적 동아리활동을 지원함으로써 전공교육을 보완하고 비전공자에도 정보통신분야에 대한 관심을 증대시키는 방안도 강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산업발전에 곧바로 도움이 되는 인력개발 및 재교육을 활성화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중소기업의 기술경쟁력 향상을 위해선 대학의 전문인력을 중소기업들에 연계시켜 주어야 한다. 또한 대학을 중심으로 정보통신 벤처기업이 육성될 수 있도록 창업에 필요한 각종 지원을 하는 창업보육센터 설립을 지원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제선진기술 교육 및 외국인 연수지원, 정보통신 종사자의 해외연수는 물론 외국의 전문가를 초빙해 첨단의 기술을 이전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특히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덜기 위해 해외의 전문기술인력을 수입,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잠재인력의 활용 및 인력양성의 환경개선, 여성이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는 소프트웨어, 영상, 콘텐츠부문 등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교육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기업들은 정보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력양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LG그룹은 지난 95년 8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육성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소프트웨어 인력양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LG그룹의 경우 그룹내 소프트웨어영역을 제품 프로세스의 내재성에 따라 연구개발부문과 SI부문, 콘텐츠부문으로 나누어 관련인력의 양성에 나서고 있다.

이제 20세기가 자본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사람의 시대일 것이다. 인력에 있어서 분야별로 갖춰야 할 조건이 있다.

경영자들은 비전을 갖고 조직을 이끌어가는 리더십을 확보해야 하고 엔지니어는 전문기술력을 갖춰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개인의 창의력과 적극성을 살릴 수 있는 교육제도와 사회분위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인력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훌륭한 인력을 확보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따라 산업이나 기업, 또는 국가의 경쟁력이 좌우될 것이며 21세기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원철린·주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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