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특집I-전자산업 10대 이슈] 통신시장 개방

통신시장 무한경쟁의 막이 올랐다.

무인년 새해가 밝으면서 국내 통신업계는 국경없는 경쟁의 살벌한 전쟁터로 내몰리게 됐다. 지금까지 정부의 보호막 속에서 안정적인 사업을 영위해 왔던 통신업계는 내국인, 외국인을 가리지 않는 개방시장이라는 새로운 환경하에서 생존의 길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더욱이 IMF 구제금융이라는 새로운 변수의 등장으로 단계적인 개방일정은 더욱 앞당겨지고 국내 업계의 자본경쟁력은 더욱 약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국내 통신시장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경쟁의 회오리에 휩싸이게 될 것으로 보인다.

1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정부가 추진해온 통신사업 구조조정 정책의 기본목표는 「시장개방에 앞서 국내 통신사업의 국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것」으로 요약된다. 먼저 국내 사업자들끼리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정부의 보호」 없이도 선진 외국업체와 맞붙어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력을 확보하라는 것이다.

97년 2월15일 타결된 세계무역기구(WTO) 기본통신협상의 골격은 기본통신 서비스 시장의 완전한 개방이다. 이는 WTO협상 자체가 통신의 초강대국인 미국의 주도로 진행돼온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세계 통신시장의 절반 이상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미국이 자국시장의 완전개방이라는 가장 강력한 카드를 앞세워 21세기 최고 유망산업이라고 일컬어지는 정보통신 시장을 독식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이 기본통신협상의 본질이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시장개방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그동안 정부가 추진해온 구조조정 정책이 과연 효과를 거둘 수 있을는지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98년 1월1일부터 발효될 우리나라의 통신시장 개방 양허안을 보면 우선 통신사업자에 대한 외국인 지분한도를 유선통신과 무선통신을 불문하고 98년부터 33%까지 허용(한국통신 20%)하고 2001년부터는 49%(한국통신 33%)까지 확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99년부터는 외국인이 한국통신을 제외한 모든 기간통신사업자의 대주주가 될 수 있게 된다.

이는 실질적으로 국내 통신사업자의 외국인 소유를 허가한다는 내용에 다름 아니다. 우리나라보다 몇수 위의 실력을 갖춘 외국 사업자가 기업인수 및 합병(M&A) 등의 방법을 통해 국내에서 사업을 하게 될 경우 과연 버텨낼 수 있는 사업자가 얼마나 될 것이냐는 의문이 제기되며 결국 국내 통신시장을 송두리째 미국을 비롯한 통신강대국들에 내주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 또한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외국인 지분을 99년부터 49%까지, 2001년부터 1백% 허용키로 한 음성부문 회선 재판매사업의 경우에는 우려의 정도가 매우 높다.

이미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수익성이 높은 소규모 지역에서 전용회선을 빌려 시내외 및 국제전화사업을 하는 재판매사업에 대한 노하우가 상당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정보통신부는 98년부터 국내사업자들에게 인터넷 전화와 국제 콜백서비스를 포함한 음성 재판매사업을 허가, 대외시장 개방전에 경쟁력을 갖추도록 했다. 그러나 단 1년간의 기간동안 수년간 음성 재판매사업 분야에 기술력과 노하우를 쌓아온 외국의 사업자를 상대할 만한 경험을 쌓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들은 통신시장이 개방될 경우 선진국업체들이 가장 먼저 노리는 분야는 적은 자본으로 손쉽게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회선재판매 분야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하고 『개방을 불과 1년 앞두고 국내사업자들에게 사업을 허가한다는 것은 대단히 늦은 감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어쨌거나 WTO 기본통신협상의 결과로 이제 통신시장 개방의 첫 날을 맞이함에 따라 국내 통신사업자들은 내부의 경쟁을 미처 경험할 틈도 없이 외부의 적을 맞아들여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실제로 세계적인 통신사업자들의 움직임을 보면 WTO 기본통신협상 타결 이후 약 1년동안 한국시장 공략을 위한 교두보 마련에 분주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국내지사를 설립하는 정도의 소극적 진출에서 벗어나 국내 통신사업자들과 전략적 제휴관계를 체결하고 실제로 사업도 성사시키는 등 다양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AT&T, 브리티시텔레콤(BT), 글로벌원, 케이블앤와이어리스(C&W) 등 다국적 통신서비스 사업자들은 합작회사 설립, 신규서비스 도입 등을 통해 한국내 사업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국내기업들은 해외시장 진출을 위해 계열사와 해외법인을 연결하는 글로벌 통신망을 구축하고 있어 세계 주요지역에 전용 노드를 갖고 있는 외국 통신사업자들의 국내 진출은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MCI와 제휴, 「콘서트(CONCERT)」라는 글로벌망을 갖추고 국내에 프레임 릴레이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있는 영국의 BT사는 서비스 품목을 다양화하고 그룹사뿐 아니라 운송회사, 해운회사, 항공사를 대상으로 한 고객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미국 AT&T도 최근 한국통신과 인터넷폰 서비스, 삼성SDS와 온라인 서비스 제휴계약을 체결하는 등 국내 통신서비스 시장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AT&T는 앞으로 콜백서비스 등 별정통신 사업과 전자우편 서비스, 전자문서교환 (EDI) 서비스 등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응용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국내업체와 제휴관계를 추진중이다.

72개 국가에서 전용회선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C&W도 온세통신과 네트워크 상호접속 및 공동 유지보수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고 프레임 릴레이 서비스에 나서는 등 국내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이콴트, 글로벌원 등도 자체 전용망을 통한 신규서비스를 잇달아 선보이고 국내업체와 제휴관계를 모색하는 등 최근 아시아, 태평양지역에서 매력적인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는 국내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다국적통신 사업자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WTO 기본통신협상은 또 통신서비스업계뿐 아니라 통신기기업계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통상산업부가 작성한 「WTO 기본통신협상 타결에 따른 국내산업계 영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유, 무선 통신서비스분야에 대한 외국인 지분한도가 대폭 확대됨에 따라 미국 AT&T, 일본 NTT, 영국 BT 등 선진 외국기업의 한국진출이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이들 외국기업은 회선 재판매사업 및 무선통신 서비스분야 등 초기투자가 적게 들면서 국내서비스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분야까지 무차별적으로 시장공략에 나섬으로써 이들에 의한 국내 통신서비스시장 잠식이 가속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통산부는 이와 함께 업체간 경쟁 및 통신서비스 확대에 따른 통신장비 수요는 오는 2005년까지 시스템 8조6천4백억원, 단말기 5조1천4백억원 등 총 13조7천억원에 이르나 외국기업의 국내 통신사업에 대한 지분확대와 이에 따른 경영참여로 외산장비의 수입비중이 전체의 43.8%에 달할 것으로 분석했다.

부문별로 보면 개인휴대통신(PCS)의 경우 약 2조9천억원대의 소요장비 중 외산비중은 43%인 약 1조2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나타났으며 범세계 개인휴대통신(GMPCS)의 외산비중은 전체 5조원의 44%인 2조2천억원, IMT-2000은 전체 3조원 중 44%인 1조3천억원이 외산장비로 충당되는 등 기기업계에도 적지않은 파장을 불러일으길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처럼 통신시장 개방이 전적으로 우리에게 불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WTO 기본통신협상에 양허계획서를 제출한 나라는 총 67개국.

이들 67개국이 전세계 통신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0%를 넘는 비율이다. 통신시장 개방은 우리 시장만을 상대방에게 열어야 하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방 시장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상대적인 협정이라는 데 이번 협상타결의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양허안 제출 국가 중 우리나라가 수년전부터 진출을 추진하고 있는 개발도상국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는 사실은 기본통신 협상타결이 가져올 긍정적인 효과를 예견케 한다. 특히 국내 통신업체들이 이미 국설교환기나 주파수공용통신(TRS) 등의 무선통신시스템을 공급한 경험이 있는 필리핀과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 국가와 삼성전자, SK텔레콤이 진출을 추진하고 있는 중남미 지역이 유망한 진출대상지역으로 꼽히고 있으며 개발도상국이나 선진국을 막론하고 CDMA이동통신 시스템 이용국가가 늘어나면서 국산 CDMA장비의 수출 또는 CDMA이동통신 서비스 시장진출 가능성도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외국에 개방될 국내시장의 경우에도 시장잠식이라는 부정적인 효과 못지 않은 긍정적인 부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있다.

시장개방이 단기적으로는 우리기업의 국내시장 점유율 하락이라는 현상을 가져오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국민들이 보다 품질좋고 저렴한 통신서비스를 기호와 필요에 따라 다양하게 골라서 이용하게 될 것이고 기업의 통신비용 부담도 줄어들어 생산성 향상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름대로 설득력을 가진다.

지난 94년 외국에 완전 개방한 부가통신사업의 경우, 당초 외국사업자의 독무대가 될 것이라는 우려와는 달리 국내 사업자가 크게 늘어나고 시장규모도 2배 이상 커지는 등 시장 자체가 크게 활성화됐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기본통신 시장개방을 굳이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물론 이같은 희망적인 관측이 성공하려면 국내외 통신시장의 현황을 적절히 분석하고 이에 대한 철저한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 선결돼야 한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시장개방이라는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채 1년도 남지 않은 기간에 할 수 있는 일은 시장개방으로 얻을 수 있는 부분은 철저히 챙기면서 동시에 외국기업의 국내시장 잠식을 최소화시키는 최적의 해결책을 찾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최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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