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자부품 및 재료업체들이 벼랑끝으로 밀리고 있다.
국내 세트업체들이 대부분 로컬거래를 중단하고 부품 및 재료의 구매방식을 내수거래로 전환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자재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부품 및 재료업체들은 세트업체들이 부품 및 재료의 구매대금을 환율을 고려치 않은 원화로 결제함에 따라 환율상승에 따른 원가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더욱이 원화결제는 현금이 아닌 어음이 대부분이어서 이들의 자금난은 가중되고 있다.
견디다 못한 업체들은 고정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장기휴무에 돌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PCB 재료업체인 두산전자와 콘덴서업체인 삼화전기는 각각 2주일에서 1주일에 이르는 장기휴무에 들어갔거나 돌입할 예정으로 있으며, 저항기업체들은 사업포기를 신중히 검토하고 있는 실정이다. 부품 및 재료업체들은 납품대금의 원화결제로 환율상승에 따른 원가상승부담을 판매가로 이전하지 못해 손해보고 파는 장사를 계속하고 있으며 급기야 고정비는 고사하고 변동비마저 건지지 못해 공장가동을 하나 둘씩 중단하고 있다.
국내 세트업체들의 원화결제가 더 이상 지속될 경우 원자재 수입비중이 높은 부품 및 재료업체들의 생산중단은 불보듯 뻔하다.
국내 전자부품 및 재료업체들의 로컬수출 비중은 대부분 20% 이상이다. 이들은 20% 정도에 달하는 내수에서는 환율상승으로 인한 손실을 기꺼이 감수하고 있다. 대부분 대기업들에 의해 수직계열화된 실정상 부품 및 재료업체들이 판매가를 일방적으로 인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5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직수출도 어렵게 됐다. 은행들이 중소업체들에는 아예 신용장 개설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소업체들이 직수출할 수 있는 방법은 이제 외상수출밖에 안남았다. 그러나 외상수출도 여유자금이 있어야 할 수 있다.
이들은 상황이 이러하기 때문에 그나마 세트업체들에 공급하는 로컬수출에 희망을 걸어왔다. 로컬수출은 달러로 결제받기 때문에 환차익이 발생, 원자재 수입에 따른 환차손을 충당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필요할땐 언제라도 대금을 융통받을 수 있어 빠듯한 자금흐름에도 숨통을 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희망은 세트업체들의 원화 어음결제로 물거품이 됐다.
이들에겐 탈출구가 보이기는커녕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어려움만 더해간다. 한국은행이 IMF의 권고에 따라 통화환수에 나섰으며 은행들은 BIS기준을 맞추기 위해 대기업들에마저 수출신용장을 개설해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세트업체들은 부품 및 재료업체들이 목졸려가고 있는 상황을 눈으로 보면서도 신용장 개설을 거부하는 은행들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원화결제를 강행하고 있다. 외환위기의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은 중소 부품 및 재료업체들은 도산을 향해 달려가는 꼴이다. 그러나 이들의 도산과 생산중단은 만도기계 사태에서 보듯 결국 세트업체들의 조업중단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어렵사리 헤쳐나가고 있는 외환위기는 이제 실물경제의 위기로 다시금 원점으로 되돌아갈 판이다.
중소 부품업계의 관계자들은 외친다. 『환율상승과 자금난이라는 엄청난 부담을 고스란히 중소 부품 및 재료업체들에만 전가하는 사태가 계속되는 한 국내 전자산업은 공멸할 수밖에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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