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302)

현미는 조심스럽게 창연 오피스텔로 들어섰다.

허름한 오피스텔.

아무래도 믿어지지 않았다. 혜경이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출퇴근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왜 이곳에서 지낸다는 것을 이야기해주지 않았을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엘리베이터. 상승버튼을 눌렀다.

18층.

사람들은 없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팻말을 보고 좌측으로 돌아섰다. 1820. 아무런 표시도 없다. 차임벨을 눌렀으나 응답이 없다. 두번 세번, 하지만 계속 아무런 응답이 없다.

현미는 현관문의 한쪽에 설치되어 있는 버튼식 키 박스를 주의 깊게 살폈다. 손잡이에도 열쇠를 끼울 수 있는 구멍이 있었다. 손잡이를 잡아 돌려보았다. 손잡이가 돌아갔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버튼식 자동키로 잠겨있는 듯했다.

어떻게 된 것일까?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분명 문제가 있기는 있는 것이다. 오늘처럼 아무런 소식도 없이 은행에 출근하지 않을 혜경이 아니었다.

아무리 급한 일이 있다고 해도, 아무리 전화가 불통이라 해도 연락없이 출근하지 않을 혜경이 아니었다. 벌써 몇년째 함께 근무한 혜경이었지만 오늘과 같은 경우는 단 한번도 없었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다시 한번 차임벨을 눌렀다. 밖에서도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역시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그동안 저녁마다 바로 이리로 퇴근하면 되었을 것을 왜 시청 쪽으로 걸어갔을까? 현미는 혼란스러웠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닐까? 다시 한번 불길한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할지 뾰족한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키 박스. 현미는 현관문 한쪽으로 설치되어 있는 버튼식 키 박스를 다시 한번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때 현미는 혜경의 오피스텔에 들어가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소식이 없어 궁금한 것과는 조금 다른 생각이었다. 자신에게 알리지 않고 이러한 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혜경이 어떻게 지내고 있었는지도 궁금한 것이었다.

순간, 현미는 네개의 숫자를 떠올렸다. 혜경의 컴퓨터와 단말기에 사용하는 암호 네 자리 숫자였다. 그것은 혜경의 생일을 나타내는 숫자이기도 했다. 혜경이 그랬던 것처럼 현미도 혜경의 단말기에서 일하곤 했었다.

혜경은 키 박스의 버튼을 천천히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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