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문별 기술동향과 매출현황-정보통신 (상);정책과 서비스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출발해 한미 통신협상을 거쳐 IMF로 마감한 97년 정보통신 정책 및 서비스 분야는 말그대로 급격한 대내외적인 시장 환경 변화를 겪었다. 정보통신이 완전한 우리 사회의 인프라로 자리잡아감에 따라 모든 정책 기조는 이의 조기 정착과 경쟁 활성화를 통한 자생력 강화에 모아졌다.
정부가 취해온 통신 서비스 경쟁 확대 정책은 일년 내내 논란과 시비를 불러 일으키면서도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잡았고 1백년간의 통신 독점이 허물어지는 격동기를 맞았다.
단군 이래 처음 겪어보는 통신시장의 경쟁 체제는 사실상 시행 원년인 올해 숱한 문제점과 화제를 낳았고 불과 수년도 못간 올해말에는 「통신사업이 더 이상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라」는 냉엄한 현실 인식을 갖게 했다.
산업적인 측면에서는 이동통신 단말기업체의 폭발적인 매출 증가와 세계 첫 상용화를 자랑하는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장비의 해외 시장 개척 가능성을 보여 줬다. 신규 서비스가 속속 등장하면서 광통신을 비롯한 신시장 창출이 이어졌고 특히 IMT2000, GMPCS 등 차세대 이동통신시스템에 대한 관심이 본격화됐다.
컴퓨터전화통합(CTI)기술이 정보통신의 키워드로 부상하면서 콜센터를 비롯, 한국통신의 통합고객정보시스템(ICIS) 등이 주목받기도 했다.
국내 통신 시장의 환경을 결정 짓는 외부요인중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WTO와 한미 통신협상 및 IMF. 무려 2년10개월간을 끌어와 지난 2월15일 타결된 WTO협정에 따르면 그간 눈에 보이지 않게 규제 되었던 통신서비스업체의 외국인 지분이 대폭 확대됐다. 유무선 모두 외국인 지분한도가 98년까지 33%로 늘어나고 오는 2001년에는 49% 범위까지 확대되게 된다.
문제가 됐던 동일인 지분 한도 역시 크게 늘어나 유선의 경우 10%, 무선은 33%로 제한 폭이 넓어졌다. 음성 회선재판매의 외국인 지분도 99년 49%, 2001년에는 1백%까지 허용키로 했다. 물론 이 협정을 주도했던 것은 미국이고 결과 역시 미국의 입김이 절대적이었다.
올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한미 통신협상은 한국측의 완패로 끝났다. 미국이 슈퍼 301조 발동을 위협하면서 한국을 우선협상대상국(PFC)으로 지정, 일방적으로 밀어부친 이 협상에서 미국은 96년부터 2000년까지 1천억달러가 예상되는 한국통신시장에 대한 접근 용이성 및 투명성 보장이라는 실리를 모조리 챙겼다.
한미 통신협상의 타결 내용을 보면 가장 큰 쟁점이 됐던 정보기술품목 관세를 오는 2000년까지 한국은 완전 철폐하고 부가품목은 4년후인 2004년에 철폐토록 했다. 또 내년1월1일부터는 통신사업자의 외국인 지분소유제한 제도를 완화키로 했다.
미국으로서는 관세 등의 진입 장벽으로 번번히 공략에 좌절을 겪었던 한국시장의 빗장을 완전히 열어 젖친 것이다. 한마디로 미국 통신업계와 정부가 「염원(?)」하던 「한국의 민간기업 장비 구매에 대한 정부 불간섭 조항」을 관철한 것이다.
한미 통신협상이 이처럼 미국의 요구를 「거의 수용」한 형태로 종결됐지만 불씨는 남았다. 협상 타결로 『미국 통신무역법 제1377조에 의거한 연례 점검 대상국에서 한국은 제외된다』는 한국정부의 설명과는 달리 바세프스키 무역대표부(USTR)대표는 『한국의 약속 이행 여부를 계속 점검하겠다』고 쐐기를 박고 나서 한국정부와 업계를 곤혹스럽게 했다.
통신시장 환경을 둘러싼 미국의 일관된 공세는 IMF 구제금융 지원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비단 통신뿐 아니라 경제 정책 일반에 걸친 신탁통치에 나서는 IMF가 앞으로는 사사건건 국내 통신서비스 및 장비업체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가뜩이나 기술 종속 우려가 증폭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업체와 정부의 자구 노력마져 이들에 의해 목이 졸릴 가능성 커진 것이다.
올해 국내 통신시장의 지각변동은 최초의 완전 경쟁체제 정착에서 비롯됐다. 정부가 지난 수년간 추진해온 경쟁 확대를 통한 경쟁력 강화 정책이 마침내 제 모습을 드러낸 것이 올해 였다.
총 10개분야 37개 사업자가 등장, 이동통신분야에서만 개인휴대통신(PCS)에서부터 주파수공용통신(TRS), 시티폰, 무선데이터 등 신규 서비스가 시작됐다. 일반전화에서도 제3 국제전화사업자인 온세통신이 지난 10월 스타트했고 하나로통신은 서비스를 준비중이다.
엇비슷한 신규 서비스가 뚜렷한 시차없이 올 하반기부터 집중적으로 시작되면서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시티폰 사업의 좌초. 기존 삐삐 사업자를 중심으로 틈새시장을 겨냥한다던 시티폰은 70만이 넘는 폭발적인 가입자를 모집, 엄청난 성공을 거두는 듯 했으나 PCS 돌풍에 밀려 사업 포기를 공식 거론할 지경으로 전락했다.
정부의 경쟁 확대정책의 첫 실패 사례로 기록될 시티폰은 「무조건 따내고 보자」며 미래의 사업성을 도외시한 채 사업권 획득에만 열을 올렸던 사업자들에겐 통신사업이 돈을 버는 것만이 아니라는 경각심을 일깨워 주었다. 현재 사업자들은 1천억원에 육박하는 망 및 장비를 한국통신에 일괄 처분하길 바라지만 민영화되는 한국통신 역시 수익성이 없는 이 부분을 떠안을 리 만무하기 때문에 골치거리로 남을 전망이다.
PCS 역시 초기 시장 선점을 노린 사업자들이 서비스 일정을 당초보다 2달 앞당기는 등 이동전화 붐을 조성하는데는 기여했지만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부작용으로 홍역을 치루고 있다. 주요 부품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단말기업체들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서비스업체당 평균 1백만명 이상의 예약 가입자들이 밀려 있고 영업은 거의 올 스톱이다.
작은 시장에 이동전화 사업자만 득실댄다는 비판 여론이 거셀만큼 이전투구 양상이 심각한 것도 문제. 기존 휴대폰과의 싸움은 서로의 불공정행위를 통신위원회에 제소하는 것으로 발전했고 1조원이 훨씬 넘는 기지국 건설을 둘러싸고도 중복 과잉투자 비반에 불구하고 서로의 입장만을 강조, 해결책이 보이지 않고 있다.
한국통신과 데이콤이 사활을 걸고 격돌한 시외전화 사전선택제도 올해 화제가 된 부분이다. 전화 사용자들이 데이콤의 식별번호를 누를 필요 없이 시외전화를 할 수 있도록 사전에 사업자를 지정하는 이 제도는 논란 끝에 우편 회신 방법으로 결정됐다.
이 제도는 사전 홍보 부족, 복잡한 선택 방법 등으로 일반 고객들을 헷갈리게 했고 호응도 예상외로 적었다. 결과에 대해서는 양사 모두 불만인 채 최근에는 선택 고객의 등록 여부를 두고 입씨름을 하고 있다.
올해 정보통신 정책 서비스분야는 갖가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일반 국민들에게는 경쟁의 실리를 만끽하게 해 주었다는 점에서 또다른 평가를 받고 있다. 이전에 향유하지 못했던 다양한 통신 서비스와 저렴한 비용이 백화점식으로 국민들에게 펼쳐 졌고 이를 선택하게된 국민들은 통신시장 최초의 「소비자 권리」를 누리게 됐다. 공급자 시장이 수요자 시장으로 바뀐 첫 해가 97년인 셈이다.
통신분야의 양대 법령인 전기통신기본법과 전기통신사업법이 올해 8월 개정되고 시행령 및 시행규칙이 잇따라 마련돼 내년의 통신시장 개방 이후 국내 통신서비스업의 구조에 대한 기본적인 룰도 세웠졌다. 이에 따라 기간통신사업에 대한 외국인의 지분이 WTO 양허일정에 따라 단계적으로 확대되며 99년부터는 외국인이 대주주가 되는 통신사업자도 생겨날 수 있게 됐다.
또 인터넷폰, 구내통신사업, 회선재판매 같은 틈새 통신사업에 대한 규정도 마련돼 내년부터는 통신서비스업이 자유화의 꽃을 피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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