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기로에선 국내 반도체산업 (상)

80년대 이후 국내 수출산업을 견인해온 반도체산업이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시대를 맞아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반도체 가격의 급락, 대만 등 후발국의 거센 도전, 대외 신용도 하락, 원화가치의 급락, IMF 긴급 자금 지원에 따르는 긴축 및 감축 경영. 어느 것 하나 국내 반도체산업에 희망적인 변수가 보이지 않는다. 첩첩산중이다. 반도체 3사 중 어느 한 곳도 내년의 투자계획이나 영업 계획을 확정한 업체가 없을 정도다. 반도체업계의 한 관계자는 『모든 현실적인 변수를 감안해 사업계획을 만들어 놓고 보면 스스로가 두려울 정도의 수치만이 도출될 뿐』이라고 실토했다. 조정된 사업계획을 내놓기가 무서운 것이다. 다만 비상경영체제라는 간판만 내걸고 있을 뿐이다. 어떻게 비상경영을 해야 한다는 대안도 떠오르지 않는다. 내부적으로 사실상 98년도 투자를 대부분 축소 또는 보류하거나 취소한 상태다. 95년부터 경쟁적으로 추진해온 해외 투자도 급작스럽게 조정해야 할 판이다. 기로에 선 국내 반도체산업의 현주소를 긴급 진단한다.

<편집자>

『국내 반도체산업은 2년 안에 세계시장 지배력을 상실할 것이다.』-국내 모 증권사의 투자분석 담당자.

『한국의 반도체산업은 향후 7∼8년 이내에 회생하기 힘들 것이다.』-외국 모 시장분석기관.

국내 반도체산업이 사상 최악의 겨울을 맞고 있다.

최근 2년간 계속된 반도체 가격 급락의 고통이 채 마무리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IMF라는 또 하나의 예기치 못한 암초를 만나면서 국내 반도체산업이 80년대 초 이후 미증유의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반도체산업은 기술개발과 생산 및 마케팅, 그리고 차세대 제품에 대한 시설투자가 톱니바퀴 돌아가듯 한치의 오차도 없이 병행돼야 하는 독특한 특성을 가진 분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반도체산업은 현재의 주력 제품분야에서 일정한 수익은 물론 차세대 제품에 대한 연구개발 및 시설 투자에 대한 여력까지 확보하는 것이 관례처럼 여겨져왔다.

하지만 최근의 상황은 차세대 제품에 대한 투자 여력은커녕 제품 자체에 대한 수익성 확보마저 어려운 지경으로 몰아가고 있다.

최소한 IMF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국내 반도체업계는 가격 급락으로 빚어진 이윤축소에 대해선 비교적 대범한 자세를 견지해왔다.

특히 현재의 시장 주력상품을 16MD램에서 64MD램으로 급속히 세대교체시키면서 상대적으로 기술기반이 취약한 후발업체들을 따돌린다면 가격안정과 시장 지배력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예상까지 하고 있었다.

「시장 지배력 상실」이란 적어도 삼성전자, 현대전자, LG반도체 등 국내 반도체 3사에는 관심 밖의 문제였다.

하지만 예기치 않았던 IMF 긴급자금 지원이라는 변수가 나타나면서 상황은 급전했다.

외환사정 위기는 바로 국내업체들의 해외 신용도 하락으로 나타났고 설비투자의 상당부분을 외자에 의존해온 반도체업체들의 목줄을 죄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IMF측이 한국의 반도체산업을 자동차 분야와 함께 과잉투자의 모델로 지목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내 반도체업체들의 투자 분위기가 급속히 냉각되기 시작했다. 투자를 하려해도 투자할 재원을 확보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내 반도체 3사는 공통적으로 내년 투자를 올해의 절반이하로 줄이는 방향으로 사업계획을 재조정하고 있다. 미국 IBM사의 기술을 도입해 반도체사업에 참여하려던 동부그룹도 외환사정이 기적적으로 호전되지 않는 한 무기한 보류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물론 국내업체들의 해외 투자 분위기도 꽁꽁 얼어붙기는 마찬가지다.

<최승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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