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먼저 저지르면 평가는 항상 엇갈리게 돼 있다. 장점이라면 선험자가 없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대로 이끌고 나가면서 「신선하다」는 칭찬까지 얻어낼 수 있는 것이겠고,단점이라면 비교, 경쟁할 대상이 없는 상태에서 얻어낸 평가가 과연 정확한 기준이 될 수 있겠느냐는 점이겠다.
이런 점에서 바네사 메이는 데뷔 당시,칼날 위에 서서 곡예를 하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얻어낸 세계적 명성과 음반의 상업적 성공을 감안하더라도 아직 바네사 메이는 그 칼날 위에서 완전하게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때문에 2집앨범 「Storm」에 대한 평가는 1집과 마찬가지로 엇갈릴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그녀의 음악계에서의 위상이 논란의 핵심이다. 클래식 음악도가 대중음악계로 전향하는 것은 이미 새삼스럽지 않은 일이고, 클래식 악기가 대중음악에 풍부한 맛을 주기 위해 보조수단으로 쓰이는 것도 비틀즈 이후 보편화 되었다.
그런데 「목에 힘을 준」 클래식 바이올리니스트에 비해 자유분방해 보이는 한 조그만 소녀의 음반 하나는 음악계에 나름대로 충격을 던져준 셈이 됐다. 바네사 메이는 싱가포르 출신으로 영국에서 자란 정통 클래식 뮤지션이다.
동양여성들이 클래식 바이올린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전례처럼 바네사 메이도 그들의 전철을 밟을 뻔했다. 데뷔 당시 16세의 발랄한 소녀였던 바네사는 레파토리는 클래식, 형식은 팝의 발랄함으로 바흐의 「토카타 & 푸가」를 연주해 금방 주목을 받게 되었다. 클래식과 팝의 접목은 새로울 것이 없었고 전자 바이올린도 최초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바네사에게는 스타로 등극할 수 있는 「끼」가 플러스 알파로 작용했다.
미인이라고 할 수 없지만 시선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고 나이보다 훨씬 성숙해 보이는 외모,전자 바이올린 하나를 들고 관중을 들었다 놨다 하는 파격적인(클래식 뮤지션들에 비하면) 무대 매너,연주곡은 클래식이나 민요 등임에도 불구하고 록이나 테크노에 뒤지지 않게 깔끔한 편곡이 돋보였던 점은 말할 것도 없고,팝과 클래식의 경계선을 오가면서 펼친 마케팅 전략도 돋보였다.
이번 앨범 「Storm」은 데뷔작에 비하면 신선한 감이 덜한데,그 만큼 청중들이 바네사에게 익숙해져 있는 탓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녀 스스로 자신을 「클래식과 팝을 넘나드는 테크노일렉트릭퓨전뮤지션」으로 규정지은 만큼 그 정의에 걸맞게 다양함이 혼재되어 있다. 타이틀곡은 비발디의 「사계」중 「여름」을 편곡한 것으로 귀에 익은 선율 덕에 반응이 좋다. 넘치는 끼를 감당하기 힘든듯 바네사가 부른 노래들도 함께 수록되어 있는데 전반적으로 테크노 느낌이 강한 와중에 도나 서머의 빅 히트작이었던 「I Feel Love」가 귀를 확 잡아 당긴다.
<박미아·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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