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긴급진단 신음하는 소형가전 산업 (상)

국내 소형가전산업에 빨간불이 켜졌다.

지난 3, 4년간 급속하게 내수 시장을 잠식해오고 있는 외산제품의 저가, 물량공세로 이미 이 분야 산업기반이 뒤흔들리고 있는데다 최근 시장경기 위축으로 중소업체들이 극심한 매출부진을 겪으면서 연일 문을 닫는 등 존립 위기에 놓여 있다.

여기에 최근 가전 대기업들도 구조조정 차원에서 소형가전부문을 한계사업으로 내세워 우선적으로 철수할 것을 검토하고 있어 이들에게 주문자상표부착(OEM)방식으로 소형가전을 납품하고 있는 중소업체들의 입지는 더욱 위축될 전망이다.

중소가전업체들이 당면하고 있는 현재 상황 및 구조적인 문제점과 앞으로의 향방을 3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국내 소형가전산업은 최근 몇년 간 급속한 외산제품의 시장침투로 갈수록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는데다 지난해부터 계속되고 있는 경기불황과 맞물려 이를 생산하던 중소가전업체들이 극심한 경영난에 봉착, 사업을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에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등 국내 금융시장이 극도로 경색되자 시중은행과 어음거래를 하고 있는 중소업체들 가운데 자금회전이 나빠져 문을 닫는 업체가 줄을 잇고 있다.

여기에 가전3사도 계속되는 매출부진을 타개하기 위한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산업보호차원에서 진행해온 소형가전사업을 한계사업으로 분류, 조만간 철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내 소형가전산업이 안팎으로 극심한 시련을 겪고 있는 것이다.

『중소협력업체와 그동안의 관계도 있고 소형가전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정부의 기본방침도 있어 OEM방식으로 제품을 조달받아왔으나 외산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는데다 이 분야 매출도 부진해 현재 상황으로서는 소형가전사업을 계속 끌고 나갈 여력이 없다.』 소형가전분야의 사업축소 및 철수를 단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가전 3사의 한결같은 설명이다.

삼성전자는 주력상품인 진공청소기와 전기보온밥솥을 빼고는 소형가전을 비롯, 일부 백색가전을 대상으로 조만간 대대적인 2차 철수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이 회사는 올 초 팬히터, 보온병, 냉온장고, 보온도시락, 키보드, 장식장 등을 단종하면서 소형가전품목을 20여종으로 대폭 축소한 데 이어 지난 8월에는 가스오븐레인지 생산라인을 라니산업에 이관하고 식기세척기도 생산을 중단, 동양매직에서 OEM공급받고 있다.

LG전자도 진공청소기, IH압력솥, 가스오븐레인지, 식기세척기 등 주력상품으로 육성하기로 한 품목 이외에 극심하게 매출이 감소하고 있는 체중계, 보온병, 안마기, 압력솥 등은 이미 단종했으며 올해는 헤어드라이어, 주서믹서, 전기다리미, 토스터, 선풍기 등 몇몇 품목을 중심으로 사업을 펼쳐왔으나 이 역시 매출이 격감해 협력업체로부터 받는 물량을 계속 줄이고 있다.

대우전자는 올들어 식기세척기, 가스레인지, 가스오븐레인지 등에 대해 자체 생산을 전면 중단하고 협력업체에 사업을 이관했다.

또 소형가전제품은 상당수를 필립스코리아로부터 공급받아 구색을 갖춰놓았으나 최근 대형할인매장과의 가격경쟁에서 뒤떨어져 판매량이 줄어든데다 마진폭도 좋지 않아 다른 해결방안을 모색중이다.

이에 대해 중소가전업체들은 『대기업들은 언제나 구조조정 얘기만 나오면 손쉽게 철수할 수 있는 OEM사업을 제일 먼저 거론한다』며 『돈이 될 것 같으면 재빠르게 중소업체의 영역을 침범해오다가도 장사가 잘 안되면 금새 OEM으로 돌렸다가 아예 철수하는 방식을 거듭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또다른 관계자는 『더욱이 국내 업체들과의 협력관계를 끊고 나면 외산을 수입하는 길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일부 업체에서는 기존처럼 제조사업부에서 직접 소형가전 생산 및 공급을 관장할 것이 아니라 영업부나 유통전문업체를 통해 해외에서 원가를 줄일 수 있는 제품을 OEM형태로 조달받아 각 대리점에 공급, 구색을 갖추면서 마진도 높이자는 방안이 적극 검토되고 있다.

여기에다 아예 대우가전마트처럼 대리점을 양판점 형태로 돌려 국산, 외산 가릴 것 없이 대리점측이 자유롭게 판매하도록 하자는 의견도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이런 추세는 몇년 전부터 급부상하고 있는 프라이스클럽, 마크로, 까르푸 등 가격파괴형 대형할인매장을 통해 외산 소형가전이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는데 비해 국내 업체들의 제품은 아직까지 종전의 대리점체제에 의존하고 있고 단가도 비싸 가격적인 측면에서나 상품구색 차원에서 전혀 대응하지 못한다는 지적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국내 중소업체들은 경쟁력있는 구조로 체질개선을 하기 위해 다각도로 자구노력을 추진하고 있지만 30년이 넘게 자체 브랜드와 유통망도 없이 대기업에 의존하면서 독자적인 기술개발에도 뒤처져 대량생산, 저가공세, 신유통망을 통해 내수시장을 잠식해오는 다국적 기업들에 속수무책으로 시장을 내주고 있다.

인천의 한 중소가전업체 사장은 『하루에 한 업체꼴로 문을 닫고 떠난다는 소문이 공단내 파다하게 나돌고 있다』며 『매출이 급격히 떨어지고 자금이 돌지 않아 종업원 월급도 제때 주기 어려운 요즘에는 차라리 문을 닫고 업종전환을 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실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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