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292)

심재학 구조대장이 손전등으로 케이블을 비췄다.

외피가 타긴 했지만 녹아내리지는 않았다.

『위에서 붙은 불이 케이블을 타고 번진 것 아닐까요?』 진압대장이었다.

『그렇지 않을 것이오. 맨홀로 솟구치던 불꽃을 보아서도 알 수 있었듯이 공기 유입이 저 아래서 되고 있소. 위에서 불이 붙었다면 이곳까지 번지지 않았을 것이오.』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 있는 김지호 실장이 산소마스크를 벗으며 말했다.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혹, 들이켜는 숨이 호흡을 곤란하게 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케이블이 불에 탄 흔적이 작아졌다.

철 층계에도 화재의 흔적이 많이 줄어 있었다. 드디어 케이블 종단, 하지만 케이블이 완전히 전소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화재의 흔적은 남아 있었다.

『김 실장님, 이것 좀 보시오. 케이블 아래에서 불길이 올라왔소. 케이블 자체에서 발생한 화재가 아니오. 발화지점은 좀더 아래인 것 같소.』 『이 아래에는 통신구에서 흐르는 물을 모으는 저수탱크가 있소. 그리고 거기에 고인 물을 펴내는 양수기 모터가 있소.』 『양수기 모터요?』 『그렇소. 어느 정도 물이 차면 자동으로 작동해 물을 외부로 퍼내는 양수기 모터요?』 『그렇다면 그 양수기 모터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이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소. 하지만 양수기 모터는 물 속에 잠겨 있소. 수중모터요.』 『그래요? 좀더 내려가 봅시다.』 철 층계가 계속 이어져 있었다. 불에 그을린 흔적이 없었지만, 금방 물이 빠진 듯 층계가 젖어 있었다. 열기도 많이 줄어 있었다.

『김 실장님, 여기요! 이곳에서 화재가 시작되었소.』 『어디요?』 분전반이었다. 수중모터를 작동시키는 분전반이 불에 탄 채로 부서져 있었다.

『이곳에서 발화하여 케이블에 옮겨 붙었소. 그리고 케이블을 따라 급속하게 불길이 번진 것 같소.』 『심 대장님, 이곳에서 발생한 화재가 그리 쉽게 케이블로 옮겨붙지는 못할 텐데요? 케이블이 불에 타기는 하지만 이작은 불씨가 케이블을 태우지는 못할 것 같은데요?』 『어쨌든 이곳이 발화지점은 분명하오. 이곳에서 불길이 시작되었소.』 아니다. 이 정도의 불길이 케이블에 불을 붙이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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