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0년부터 정부가 국책과제로 선정, 전자4사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해온 「HDTV 개발 프로젝트」가 골라인을 눈앞에 두고 흔들리고 있다. 지난달 22일 LG전자가 디지털TV용 핵심 칩세트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하자 국책 프로젝트에 LG전자와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는 삼성전자, 대우전자, 현대전자 등 3사가 이에 강력히 반발하면서 다각적인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 5개로 구성된 디지털TV용 칩세트를 선보인 LG전자는 이 칩세트를 채용한 디지털TV를 내년 하반기에 상품화, 세계 디지털TV시장에서 선두주자로 나서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삼성전자, 대우전자, 현대전자는 LG전자가 디지털 칩세트를 개발했다고 전격적으로 발표한 것은 지난 95년부터 국책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는 「HDTV용 주문형 반도체(ASIC) 개발 프로젝트」의 사업운행 지침에 명시된 비밀유지 조항을 위반한 것이라며 LG전자를 집중적으로 성토하고 나섰다.
운행지침 제9장 36조(비밀유지 조항) 제1항에는 개발사업에 관해 얻은 비밀사항에 대해서는 이를 공표하거나 타인에게 누설해서는 안된다고 명기되어 있으며 제2항은 개발사업기간중에 발생한 개발성과에 대해서는 선도기술 개발사업의 기술개발 결과임을 표시하고 중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사전에 관계부처와 협의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즉 LG전자가 디지털TV 칩세트를 발표한 것이 국책과제의 기본자세인 상호협력의 정신을 정면으로 위배했을 뿐만 아니라 특히 국책사업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칩세트 개발을 발표한 것은 공동 프로젝트를 깨뜨리더라도 디지털TV사업에서 기선을 잡아보겠다는 다분히 이기적인 의도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대우전자, 현대전자측은 LG전자의 칩세트 발표가 있는 직후 모임을 갖고 LG전자에 구체적으로 불이익이 돌아가도록 단호한 조치를 공동으로 취하자는 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같은 3사의 주장에 대해 LG전자는 『LG전자의 칩세트가 국책과제의 목표와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결코 똑같은 것은 아니다』라면서 『경쟁사보다 많은 비용과 노력을 투입해서 얻어낸 결과를 발표하는 것은 시비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응수하고 있다. 또 LG전자는 칩세트를 발표하기에 앞서 정부 주무부처인 통상산업부와 HDTV 칩세트 개발 프로젝트를 주관하고 있는 전자부품종합기술연구소(KETI)에도 사전통보하고 묵인을 받았기 때문에 발표절차에도 아무런 하자가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삼성전자, 대우전자, 현대전자측은 『아직까지 LG가 관계기관에 칩세트발표와 관련해 사전협의가 있었다는 것을 입증할 만한 아무런 증거가 없고 사전협의 내용이 자신들에게 전혀 통지된 바가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또 LG전자가 발표한 칩세트는 근본적으로 국책과제가 지향하고 있는 연구작업을 기반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국책과제의 성과를 공동으로 발표하기로한 합의를 완전히 무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국책과제와 별도로 각사가 칩세트를 개발해놓고도 국책과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발표를 자제해온 점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 95년부터 시작된 HDTV용 ASIC 개발프로젝트는 삼성전자와 현대전자가 오디오와 채널(수신장치) 영역을 담당하고 LG전자와 대우전자가 비디오 디코더와 디스플레이 분야를 담당하는 방식으로 진행돼 왔다. 따라서 이번 LG전자의 디지털TV 칩세트 발표를 놓고 야기된 양측의 갈등은 내년부터 디지털TV 상품화 경쟁이 시작되는 점을 감안해볼 때 국내업체들간 공조체제에 적지 않은 파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오는 2000년 공동개발한 칩세트를 장착한 HDTV를 선보이는 것을 목표로 추진돼온 HDTV 국책프로젝트가 국내 가전업체간 가장 모범적인 공조사례라는 그동안의 평가가 무색하게 골라인을 앞에 두고 순식간에 와해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유형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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