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영화」는 매우 파격적으로 진행된다. 관객의 미감을 고의로 무시한 듯한 대형 자막이 과시하듯 화면에 툭툭 튀어나온다. 「정해진 시나리오 없다」 「정해진 카메라 없다」 「정해진 편집 없다」 「정해진 미술 없다」 「정해진 음악 없다」 등등.
화면은 마구 흔들려 어지럽다. 그런데도 영화는 아랑곳 하지 않는다. 가출 비행청소년으로 불리는 아이들이 자진해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므로 이 만한 고육쯤은 참아보라는 식이다. 그래야 그들이 이미 거친 쾌감을 여과없이 맛볼 수 있는 것이 아니겠냐는 듯이.
이상한 것은 「정해진 건 다 없다」면서도 감독 이름만은 버젓이 자막처리된 점이다. 아마도 이 거친 필름에 대한 감독의 자만심의 표현이겠지만, 이 필름을 장선우의 영화로 읽어도 좋은 구실을 이 자막은 제공해주고 있다.
감독이 자신의 영화를 가리켜 「나쁜 영화」라고 일컫는다는 것은 겸어법이지 일상어법이 아니다. 게다가 그것이 영화마다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장선우의 표현법이라면 더욱 그렇다.
장선우는 이 영화를 결코 「나쁜 영화」로만 읽지 않게 하는 몇 가지 시도를 한다. 그러나 장선우는 그의 「나쁜 영화」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사항이 될 「나쁜 아이들」을 판단하는 데 지나치게 조심한다. 그리하여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겠다고 영화의 서두에서 밝히고 있지만, 그러나 화면에 담긴 것은 「나쁜 아이들」에 대한 감독의 자가당착적인 태도다.
이 사회가 「나쁘다」고 낙인찍는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부당한 것인가를 폭로하겠다는 의지가 영화에 표현되는가 하면, 그 다음 장면에선 가출 청소년에 대한 감독의 이같은 공감어린 시선을 곧장 부정해버리는 장면(가출 청소년들이 지하철 행려병자와 동일시되는)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감독이 범하고 있는 이러한 자가당착 때문에, 이 영화가 끝내 「나쁜」이 무엇인지 보여주지 못했다는 데에 있다. 제목과 포스터가 주었던 그 팽팽한 쾌감 혹은 역설법을 화면으로 옮기는 데에 실패했다.
이 실패는 두 가지 면에서 장선우에게 치명적이다. 하나는 이 영화로 인해 장선우는 「밑천 안들이고 거저 먹으려 했다」는 혐의를 피할 수없게 됐다는 것이다. 나머지 하나도 상업적 의도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나쁜 아이들」에게 있는 그들 나름대로의 진정성 혹은 저항성을 허구화하지 않고 보여주겠다는 약속이 한낱 위장술로 드러나는 순간, 이 나라의 유명감독이 단지 돈벌이를 위해 대체 어떤 일을 벌였는지를 관객은 똑똑히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장선우는 자신의 「나쁜 영화」가 보여주는 것이 「괜히 화질만 나빠 눈만 버리게 했다」는 투정을 관객으로부터 왜 받아야 하는지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채명식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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