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과 무선, 고정과 이동통신 사이의 경계가 점차 허물어지고 있는 가운데 한편에선 통신과 방송의 통합 추세가 시대 조류로 자리잡고 있다.
한국에서는 종합유선방송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케이블TV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통신과 방송의 영역을 허무는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전회에서는 LMDS(지역다지점분배서비스)를 「이동통신 사업자의 고정통신 시장 진출」이라는 측면에서 주로 다루었으나 LMDS 그 자체는 아직 「방송」이라는 사실 또한 간과해서는 안된다.
즉 SK텔레콤이 LMDS사업을 어떤 의도에서 접근하고 있느냐와는 상관없이 일단 큰 줄기에서는 통신사업 내부에서의 영역파괴 측면보다는 통신사업자의 방송사업 진입 현상의 하나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케이블TV망은 주로 방송사업자들의 통신시장 진출통로로 여겨지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다.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케이블TV사업자들의 각종 통신 실험은 통신시장의 장벽을 허물기 위한 방송사업자들이 끊임없는 도전인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전력이 그 도전의 선봉에 서 있다. 전력사업자인 한전은 안정적인 전기 공급을 위해 배전선로자동화를 추진한다는 명분으로 통신선로를 구축해 왔으며 이 선로를 활용한 통신사업 진출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따라서 케이블TV 전송망사업은 한전이 통신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선택한 우회경로로 풀이된다. 한전은 최근의 2차 케이블TV 전송망사업에서도 전체 24개 구역 가운데 23개 구역의 유선전송망 사업권을 획득해 그동안의 막대한 적자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투자의욕을 보이고 있다. 한전은 결국 전력사업자에서 방송사업자로, 또 통신사업자로의 변신을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도 지난해 말 케이블TV 전송망을 통신서비스에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케이블TV사업자들의 통신사업 진출에 대한 정책적인 장벽은 거의 사라졌다. 따라서 기술적,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난관만 해결한다면 케이블TV망은 통신사업 구도에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변수로 등장할 것이 분명하다.
한국통신을 비롯한 통신정책 당국자들은 케이블TV망의 활용 가능성에 대해 일단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케이블TV망으로 통신서비스를 제공하기까지에는 앞으로도 넘어야할 산들이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케이블TV사업자들의 의지가 확고한 이상 케이블 TV망에 전화가 실리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일단 실리기만 하면 통신시장에 미칠 영향은 엄청날 것이라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일단 케이블TV사업자들은 케이블TV와 전화, 인터넷 등의 패키지 상품으로 통신서비스 가격구조의 뿌리를 흔들 것이 분명하다. 한전이라면 여기에 전기요금까지 포함시킬 지도 모를 일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전화요금구조가 종량제에서 정액제로 바뀌는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날 지도 모른다는 전망까지 제시하고 있다.
또한 케이블TV망은 유선통신 서비스의 본격적인 광대역화를 촉발시킬 것이다. 유선이든 무선이든 케이블 TV전송망은 방송서비스에서 출발한 기술로서 기본적인 광대역 서비스의 기반을 확보하고 있어 광대역 통신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촉발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케이블TV망은 방송과 통신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것은 물론 통신시장의 울타리 안에서의 영역파괴를 부추기는 촉진제의 역할을 할 것이며 통신사업자들의 생존경쟁은 갈수록 첨예해질 것이 자명하다.
<최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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