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진단] 美 인텔, 특허권 침해 시비에 곤욕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 지배자인 미 인텔이 특허권 침해 시비에 휘말려 곤경을 겪고 있다.

반도체 시장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고성장을 지속, 업계의 부러움을 받아 온 이 회사가 최근 디지털이퀴프먼트사와 인텔 호환칩 생산업체인 사이릭스로부터 잇따라 특허권 침해 혐의로 제소당하는 지경에 놓인 것이다.

더욱이 이번 특허권 침해 소송과 관련, 인텔의 독점적 시장 지배에 대한 반독점법 위반 주장까지 제기돼 인텔을 더욱 난처한 입장에 몰아 넣고 있다.

일부에선 이번 사건으로 인텔이 마이크로소프트에 이어 컴퓨터 산업계의 주요 공격 표적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소프트웨어 시장의 지배자인 마이크로소프가 반독점법 위반 등 숱한 사건에 휘말린데 반해 인텔은 그동안 별 문제를 야기시키지 않고 시장을 사실상 독점해왔다.

그러나 철옹성 같은 인텔의 아성에 도전하는 업체들이 늘어나면서 인텔도 이젠 이들과 크고 작은 갈등을 겪지 않을 수 없게 됐다는 지적이다.

인텔을 상대로 한 디지털과 사이릭스의 마이크로프로세서 관련 특허 침해 소송은 바로 이런 변화를 보여주는 가시적 사건이라는 것이다.

인텔이 이처럼 업계의 공격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마이크로소프트와 마찬가지로 이 회사가 컴퓨터 산업에 지나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의 85%를 장악하고 있는 인텔은 그 영향력을 마더보드와 워크스테이션 및 네트워크 시장으로 확대해 가고 있다.

그 결과 「실리콘 밸리의 돈버는 기계」라는 별칭에 어울리게 이 회사는 지난해 2백8억달러의 매출액에 52억달러의 막대한 순익을 낼 수 있었다. 투자 또한 다른 업체들로선 엄두를 낼 수 없을 만큼 막대하다. 올해는 신규 공장 건설과 제조 장비 도입에 40억달러를 쏟아붓고 연구 개발에도 25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인텔이 미국에서 「가장 괜찮은 회사」라는 호평과 함께 「악의 세력」이란 비난을 동시에 받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인텔을 악의 세력으로 보는 측은 인텔이 시장 지배력을 남용해 지나치게 많은 이익을 챙기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디지털의 특허 소송 제기는 인텔에 대한 이런 비난이 제기되고 있는 것과 맞물려 앞으로 인텔의 컴퓨터 산업에서의 역할에 대한 뜨거운 논쟁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디지털은 인텔이 「의도적으로 치밀하게」 마이크로프로세서 성능 향상과 관련된 자사 특허 10건을 침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디지털의 로버트 팔머 회장은 이와 관련, 인텔이 지난 4년간 고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도 정당치 못한 기술 도용의 결과라며 인텔을 맹비난하면서 『우리(디지털)는 다른 회사의 기술과 경쟁하는 것은 꺼리지 않지만 우리 자신의 기술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해 이번 소송을 통해 인텔과의 일전을 불사할 것임을 강력히 시사했다.

디지털은 이와관련, 특허 침해 혐의를 받고 있는 인텔 제품들을 시장에서 철수시키고 거액의 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도록 법원이 필요한 조치를 취해 줄 것을 요청했다.

디지털은 또 고객과 일반 국민의 여론을 등에 업기 위해 자사 입장을 표명한 신문 전면 광고를 내는 등의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디지털의 이런 일련의 움직임은 인텔이 이 회사 최대의 칩 공급업체이자 고객이었다는 점에서 상당한 강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디지털이 「죽기 아니면 살기」로 행동하고 있다며 이는 인텔칩보다 성능이 앞선다는 고속 알파 칩의 개발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인텔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있는 디지털의 좌절감이 이런 강수로 이어졌다는 분석을 하고 있다.

그러나 또다른 측은 인텔이 휴렛패커드와 공동으로 고속의 「메르세드」칩을 개발하는 것에 대해 디지털이 「선제 공격」을 한 것이라고 풀이한다. 메르세드가 개발되면 알파칩이 갖는 기술적 우위마저 잃을 수 있는 상황에 처해 디지털이 먼저 인텔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는 것이다.

인텔은 그러나 디지털의 주장을 검토한 결과 「디지털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디지털측에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양측 모두 치열한 전투를 각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일부 분석가들은 인텔이 디지털을 상대로 이번 제소에 대한 역제소를 감행할 공산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인텔은 반도체 분야에서 최근 3년간 1천개 이상의 특허를 획득한 것으로 알려져 역제소를 하게 되면 인텔이 결토 불리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이들은 보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도 만만치 않은 준비로 인텔을 위협하고 있다.

이번 소송 제기를 발표하면서 팔머 회장은 특허건과 별도로 인텔의 반독점법 위반 혐의를 들고 나와 파장이 더욱 커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팔머 회장은 『인텔이 PC용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의 독점적 지위를 기반으로 고성능 워크스테에션 및 서버 시장도 지배하려 한다」며 『이는 컴퓨터 산업의 혁신과 성장에 필수적인 경쟁 환경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이제야 말로 이런 불법적 관행을 종식시켜야 할 때이며 디지털은 이를 꼭 지켜 볼 것』이라고 말해 인텔을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제소할 가능성이 있음을 내비쳤다.

호환 칩 생산업체인 사이릭스의 경우 인텔을 단지 특허 침해로 제소했을 뿐 다른 비난을 삼가한 것과 비교하면 팔머 회장의 이런 발언은 디지털이 인텔에 대해 갖고 있는 불만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게 한다.

한편, 인텔이 칩 가격과 공급 조절을 통해 컴퓨터 산업을 좌지우지하려 한다는 컴퓨터 업계의 불만이 커지고 있는 것과 맞물려 디지털과 인텔의 특허 분쟁이 자칫 업계 차원의 조직적인 「반인텔 반독점」 논쟁으로 옮아갈 경우 그 파급력은 예상을 훨씬 뛰어 넘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오세관 기자>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