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새로운 시각의 영화제작

대기업들이 외화수입에 지나치게 많은 돈을 쓰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시장규모가 우리의 6.1배인 일본과는 같은 가격을, 3.6배인 프랑스보다는 곱절 가격을 지불하는 상황이니 이같은 비판은 어쩌면 당연하다.

영상물의 수입가격은 그 나라 시장규모에 따라 다르게 책정된다는 기초상식이 우리 기업에는 통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나 수입가를 낮추라는 요구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한국영화 절대부족이라는 근본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앞질러서 말하면 한국영화의 질적 향상과 양적 확대 없이는 수입가 현실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대기업이 영화를 수입하는 것은 영화관 상영, 비디오 제작, 케이블TV 방영, 지상파 방영권 판매 등 다양한 용도로 쓰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수입가 상승의 주범이라 비판받는 대기업이 연관시장을 완전장악하고 있다. 지난해 2천7백19억 규모의 국내 비디오시장에서 CIC를 제외한 4개 직배사(국내 제작사를 통해 출시)와 시네마트, SKC 등 국내 7대 브랜드의 매출은 2천2백32억원으로 전체의 82%나 차지했다.

케이블TV 영화채널은 대우(DCN), 삼성(캐치원)의 분할구도다. 대기업은 또 안정된 유통체계를 짜기 위해 영화관 확보에 열심이다. 자연히 대기업은 조금 무리하더라도 물량확보에서 앞서는 것이 전체적인 경쟁에서 유리하다고 판단한다.

지난해 본심의를 마친 외화가 4백5편인데 비해 한국영화는 66편으로 전체의 14%에 불과했다. 게다가 비디오 판매량을 지나치게 의식하다 보니 제작비는 많이 쓰는 데 비해 작품완성도에서는 실패하는 기획이 많았다. 비디오시장은 3백여편 가량 쏟아져 나오는 「에로물」로 버티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애로물은 또 방송을 탈 수 없다.

이에 비해 프랑스는 지난 95년에 1백15편 제작에 2백35편을 수입했고 일본은 2백51편 제작에 3백2편을 수입했다. 수입가 상승은 상대적인 것이다. 좋은 한국영화가 없으면 외화를 찾게 되고, 그럴수록 가격은 오른다. 일정한 편수의 한국영화, 작품성과 다양성의 확보, 이것이 해결책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해결책에 다가갈 것인가. 우선 가장 큰 투자자인 대기업이 한국영화 제작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대기업은 제작비 투자나 직접제작보다는 지급보증 역할을 강화해야한다. 이것이 군소 제작사와 달리 대기업이 해낼 수 있는 역할이다. 모험자본이나 신용보증기금 등을 활용하여 투자의 위험부담은 줄어든 대신 프로듀서의 기획력을 살림으로써 다양하고 많은 영화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배급부문도 강화된다.

지금처럼 영화 한편의 제작에 전전긍긍 하지 말고 넓은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할리우드 흥행작 몇 편을 제외하면 한국영화 흥행실적은 외화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흥행은 결국 확률의 게임이다. 아울러 관객 저변을넓히고 외국에서도 인정받는 영화를 제작하여 영화시장을 키우는 일도 필요하다. 한국에서 유일한 예술영화전용관이 그나마 자리를 잡는 것은 우일영상의 예술영화 비디오출시에 힘입은 바 크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한국영화가 많고 다양해지면 지금처럼 비싸게 들여온 외화에 밀리는 일은 줄일 수 있다. 배급에서 힘을 발휘하는 직배와 외화의 묶음판매 전략을 일정하게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디오로 영화제작 기금을 조성하는 것도 대기업이 해결해 줘야 할 일이다. 또 정부는 대기업의 영화업 참여를 공식화해 주어야 한다. 실제로 『다 하고 있는데 이름만 못쓰게 한다』는 눈가리고 아옹하는 식의 태도는 버려야 한다. 만약 제작, 수입, 배급, 흥행 중의 어느 부문이 중소기업 고유업종이라는 입장이라면 명확하게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지 않다면 전문제작사와 대기업간에 바람직한 역할분담이 이뤄지도록 정책 조정자의 역할만 맡으면 된다.

끝으로 지상파방송사가 영화제작에 선투자해야 한다. 큰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방송판권 구매액만이라도미리 투자하면 한국영화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게 되어 있다.

제작의 노하우는 실패하면서도 쌓인다. 그러나 우리 대기업은 겨우 한 편 실패한 프로듀서를 과감히 갈아치운다. 이런 식으로는 그 기업의 성공은 물론 한국영화의 미래도 기약하기 어렵다. 외화수입에 대한 비판도 필요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더 시급한 것은 영화제작에 대한 시각을 새롭게 하는 일이다.

<金惠俊 한국영화연구소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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