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던 세계 컬러브라운관(CPT) 기상도가 먹구름으로 변하고 있다. 올해 세계 CPT시장은 최소 8백29만개에서 최대 1천4백96만개에 이르는 사상 유례없는 대량의 공급과잉이 우려되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 수치만으로도 이같은 공급과잉 예상량은 지난해 4백만개의 2∼3배에 이른다. 이같은 공급초과량은 결국 업계의 재고부담으로 귀결돼 생산량 대비 재고비중도 무려 3.6∼6.5%에 이를 전망이다. 지난 95년 공급부족에서 공급과잉으로 돌아섰던 지난해에는 재고비중이 불과 1.9%였다.
이처럼 올 들어 CPT시장이 사상 초유의 공급과잉 사태를 맞게 된 데는 브라운관 업계의 경쟁적인 설비증설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브라운관 업계의 설비증설은 삼성전관, LG전자 등 국내 양사와 대만의 중화영관이 주도하고 있다.
국내 양사는 가전분야의 글로벌 경영체제 구축에 따라 컬러TV의 핵심부품인 CPT를 현지에서 조달하기 위해 해외 복합단지 내에 잇따라 CPT 생산라인을 도입하는 한편 국내공장에서는 고부가제품인 컬러모니터용 브라운관(CDT) 신, 증설에 심혈을 기울여 왔으며, 대만의 중화영관은 자국 모니터사업의 강세를 바탕으로 CDT의 생산확대에 총력을 쏟아왔다. 이밖에도 도시바와 필립스, 소니, 마쓰시타, 오리온전기 등도 올해에는 CDT의 증설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어서 올해 브라운관시장에서는 CPT보다 CDT의 공급과잉이 과다하게 발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업계는 CPT 2백30만개, CDT 1백60만개의 공급초과가 일어난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에는 정반대로 CPT는 2백30만∼4백50만개의 공급과잉이 예상되는 반면 CDT는 5백99만∼1천46만개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공급과잉 양이 CPT의 70%에 불과했던 CDT가 올해에는 오히려 CPT의 2배가 넘을 정도로 남아돈다는 계산이다.
CDT에서 이처럼 많은 공급과잉이 발생할 것으로 보는 까닭은 세계 브라운관 업체들이 부가가치가 떨어지는 CPT의 생산확대를 최소화하는 대신 고부가 제품인 CDT의 증산에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중화영관이 지난해 말 기준으로 1천3백만개이던 CDT 생산능력을 올해 말에는 1천9백만개로 무려 50% 가까이 늘릴 예정이고 삼성전관, LG전자, 오리온전기 등 국내 3사도 생산능력을 지난해 말보다 50% 정도 신장된 1천2백만개 가까이 확대할 계획이다. 또한 도시바, 필립스, 소니, 마쓰시타 등도 예외없이 CDT의 생산확대에 가세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CPT는 사실상 작년과 거의 다를 바 없는 시장이 형성될 것이지만 CDT에서는 과다한 공급초과로 치열한 선점경쟁을 치러야 할 운명이다.
크기별로는 14인치의 공급과잉이 두드러질 전망이다. 14인치 생산이 대부분인 중화영관이 생산량을 50% 가까이 늘릴 방침이나 올해 14인치 제품의 수요는 지난해에 비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지난해 최대 이슈품목이었던 15인치 제품도 올해에는 공급과잉 현상이 나타나 업체들이 큰 재미를 누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국내 3사 증설량의 대부분과 중화영관 증설량의 일부가 15인치에 치중돼 있어 공급량이 15인치 수요를 상회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17인치 제품은 올해 가장 호조를 누릴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17인치 제품은 전체 시장에서는 25% 미만을 차지할 것이지만 기술상의 이유로 공급량이 상대적으로 달릴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작년과 수급측면에서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이는 CPT에서는 올해 중국시장 등의 호조로 대형제품의 신장세가 두드러져 오히려 업계의 채산성은 호전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업계는 CDT의 지나친 공급과잉에 대응, 올해 공격경영으로 판로를 확보한다는 전략이나 여의치 않을 경우 10∼15% 정도에 이르는 감산도 고려하고 있다.
<유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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