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108)

혜경은 환철의 손끝에서 늘 재즈의 리듬을 느낄 수 있었다. 재즈의 리듬에 따라 환철의 손가락 하나가 브래지어 라인을 타고 젖가슴 쪽으로 움직여 오는 듯했다.

스치듯 지나친다.

누른다.

살짝, 강하게.

돌린다. 살살.

째즈의 리듬에 맞추어 환철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리듬에 맞추어 누르고 풀고 압박하면서 다가들었다.

소방관이 뿌려 대는 물에 작은 무지개 하나가 생겼다가 빠르게 사라져 갔다. 한참 서쪽으로 기운 태양 빛이 주변 건물에 반사되어 눈을 부시게 했다.

혜경은 다시 눈을 감았다.

숨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아프리카 넓은 땅에 우뚝 솟아 있는 킬리만자로처럼 혜경의 젖가슴은 당당했다. 스스로 유혹받을 만큼 균형 잡힌 몸매에 알맞은 곳, 알맞은 크기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 정상을 향해 파고들기 시작했다. 천천히. 리듬을 타면서 그 손가락 하나가 가파른 정상을 향해 파고들었다. 누르며, 돌리며 재즈의 리듬에 맞추어 혜경의 꼭지점을 향해 다가서고 있었다.

숨이 멈춰졌다. 환철과의 섹스 중에도 그랬다. 환철은 늘 혜경의 젖가슴 꼭지 정점에서 동작을 멈추곤 했었다.

표피(表皮)와 표피(表皮).

닿을 듯 말 듯, 누를 듯 말 듯, 돌릴 듯 말 듯.

하지만 멈춤은 강렬한 움직임보다도 몇 배나 더 강한 긴장감을 주었다.

혜경의 의식과 육체가 그 꼭지의 정점으로 모여들었다. 피 한 방울, 세포 하나까지도 다 모여드는 듯했다.

머리카락 하나하나 사타구니의 체모 하나하나까지도 그 꼭지 정점을 향하여 모여드는 듯했다. 육체와 의식 모두가 한 꼭지점으로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긴 사이렌 소리가 이어졌다.

눈을 떴다.

맨홀에선 계속 불길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혜경은 주변을 살폈다. 또다시 짧은 무지개가 스쳐 지나갔다.

불씨. 환철이 심어 놓은 불씨가 이제 또다시 불붙기 시작하는 것이다. 분명 알고 있으리라. 늘 혜경의 곁에서 맴도는 독수리는 알고 있으리라. 프로메테우스의 간장이 생성되는 것을 지켜보듯이 육체의 불씨가 차츰 차츰 불길로 변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으리라. 오늘도 환철이 혜경의 방으로 찾아 들게 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으리라. 그 독수리는 단 한 번도 혜경의 생각을 거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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