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영화제, 비디오 사전심의도 도마 위에

공연윤리위원회의 가위질을 거치지 않은 무삭제 비디오상영이 강행됨으로써 영화에 이어 이번에는 비디오 사전심의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2일부터 이화여대에서 열리고 있는 제1회 인권영화제에서 공윤의 사전심의를 통과하지않은 작품들이 극장스크린이 아닌 비디오 화면으로 일반공개 됨으로써 주최측의 「음반 및 비디오에 대한 법률(이하 음비법)」위반에 대한 문체부의 대응이 업계의주목을 받고 있는 것.

인권운동사랑방을 비롯 인권단체들의 공동주관으로 8일까지 계속될 이번 영화제 기간 중에는기지촌 출신 여성들의 삶을 그린 <이방의 여인들(미국)>을 비롯해 한 젊은이의 눈을 통해관료주의의 폐해를 고발한 <어느 관료의죽음(쿠바)>, 양심수 4백 50명의 얼굴사진을 연속적으로 담아낸 <그리운 얼굴들(한국/퓨쳐 아트)>, 노동문제를 파헤친 <해고자(한국/노동자뉴스제작단)>, 김동원씨 구속사건의 계기가 된 <분단을 넘어선 사람들(한국/푸른영상)> 등 국내외 화제작 총 32편이 상영될 예정이다.

이번 영화제 출품작의 경우 「의문사」「실종」「양심수」「동성애」「난민」「매춘」「인종차별」등 첨예한 인권문제들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소년보호법에 위배될 만한 음란 장면이 포함되었거나 국가보안법에 저촉될 만큼 이데올로기를 부각시킨 작품이 없기 때문에 음비법 이외의 현행법으로는 영상물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기 어려울 듯 보인다.

그러나 공윤의 사전검열이 철폐된 영화나 음반분야와는 달리 비디오의 경우는 7월 1일부터시행되온 개정 음비법이 수입추천 및 공윤심의를 의무화하고 있기 때문에 행사주최측의 위법사실은 명백한 상황이다.

인권영화제 조직위원회의 한 실무자는 『음비법 위반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공권력의 검열을 단호히 거부한다』면서 『인권영화제가 우리나라에서도 선진국 수준으로 표현의 자유를 선진국 보장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에대해 공윤은 『집행기관이 아니라 심의기관이므로 음비법 위반여부를 가릴 수는 없는 일』이라며 논의자체를 일축하고 있다.그러나 문체부는 영화제의 허용하거나 강경규제할 수 없는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해 있다.

인권영화제 조직위원회가 매스컴을 통해 현행법 거부 의사를 공표한 만큼,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을 때는 직무유기라는 비난을 받을 우려가 있고,반대로 법적 처리를 촉구할 경우 최근 불거져 나오기 시작한 비디오 심의위헌 여론을 확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체부 영상음반과의 한 관계자은 『파급효과가 큰 상업용 비디오테이프가 아니라는 점에서이번 사건을 크게 문제삼지 않을 방침』이라며 「음비법 일부조항의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은인정하지만 영화법 개정안의 윤곽이 잡힌 이후라야 음비법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관련업계에서는 헌법재판소에 의해 국가기관으로 판정받은 공윤의 비디오 심의는 더이상 명분이 없는 만큼 인권영화제 개최를 계기로 본격적인 음비법 개정논의가 이루어 지기를 기대하는 분위기.

극장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대한 출입통제가 비교적 용이한 영화와는 달리각 가정으로 대여되는 비디오의 경우 심의주체의 공백이 생겼을 때 음란퇴페물 범람으로 인한 청소년 탈선 등 사회혼란이 야기된다는 점에서 해당부처인 문체부가 음비법 개정에 대한 요구를 수용하는 동시에 건전한 비디오문화 육성을 위한 대비책 마련을 서둘러야 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이선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