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는 토치램프의 조절레버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이내 불꽃이 수그러들었다. 불꽃이 뱀의 혀처럼 날름거리는 불꽃이 되었을 때 사내는 조절레버를정지시켰다. 뻘겋게 달았던 토치램프의 숭숭 구멍 뚫린 분출구가 갈색으로변했다. 조용했다. 조용한 만큼 어둠이 맨홀 속을 차지했다. 사내는 담배 한개비를 꺼내어 토치램프의 흐느적거리는 불꽃에 대고 빨아들였다. 어둠은 또다른 불빛에 흔들렸다. 사내는 길게 담배연기를 뱉어내며 하늘을 보았다. 동그란 하늘. 높고 푸르렀다.
사내는 준비된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펜치, 니퍼, 납, 칼. 사내는 놓여져 있던 여러가지 장비를 준비된 가방에 챙겨넣었다. 부근에 흩어진 작은 전선조각까지 가방에 챙겨넣은 사내는 입고 있던 웃옷 주머니에 있던 리모콘을챙겨 뒷주머니에 넣었다. 작았지만, 일반적인 리모콘이 아니었다. 화면이 달린 특수한 형태의 리모콘이었다.
웃옷을 벗고 장갑도 벗어 가방에 챙겨넣은 사내는 마지막으로 토치램프의조절레버를 오른쪽으로 완전히 돌려 잠갔다. 불꽃이 사라지고 어둠이 맨홀속으로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동그란 하늘이 맨홀 속으로 밀려들었다.
사내는 맨홀 밑바닥에 얇게 고여 있는 물에 토치램프의 분출구를 담갔다.
치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솟아올랐다. 잠시였다. 사내는 열기가 사라진 토치램프를 가방에 챙겨넣었다.
사내는 자연스런 동작으로 사다리를 타고 맨홀 위로 올라섰다. 사내의 키보다 한참 큰 사다리였다. 사내는 방금 타고 오른 사다리를 들어내어 접었다. 작은 키의 사내였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부피가 되었다.
사내는 맨홀 바로 앞에 주차되어 있는 승용차의 트렁크를 열고 사다리와가방을 실었다. 맨홀의 옆으로 화물차가 주차되어 있었고, 앞과 뒤에 승용차가 주차되어 있어 맨홀은 외부에 노출되지 않게 되어 있었다.
맨홀 뚜껑을 닫는 일이 사내에게는 가장 어려운 듯싶었다. 다른 일과는 달리 곡괭이를 이용하여 육중한 무게의 뚜껑을 닫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어렵게 뚜껑을 닫은 사내는 맨홀 뚜껑을 열고 닫았던 곡괭이도 승용차의 트렁크에 실은 다음 태연하게 도로로 나섰다. 차량의 통행이 금지된 도로에는 연기가 가득 차 있었고, 소방차의 사이렌소리와 경보등이 번쩍거리고 있었다.
사내는 모여든 사람들을 힐끗 한 번 쳐다본 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창연오피스텔.
꽤 오래된 건물이었다. 입구는 물론 1층 로비에도 사람들은 없었다. 불구경을 나선 때문이었다.
사내는 엘리베이터의 상승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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