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아남그룹, FAB사업 진출 배경과 전망

아남그룹의 반도체 일관가공사업(FAB) 진출은 무엇보다 국내 반도체산업의취약지대로 인식돼온 비메모리분야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줄 만한 전기를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와 관련해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당초 예상과는 달리 기술제휴를 통한 단독투자라는 것과 주력생산품목이 비메모리제품 가운데서도 유망제품으로 꼽히는 디지털 시그널 프로세서(DSP)라는 점이다.

아남의 FAB진출은 이미 해외 비메모리 유력업체들을 상대로 합작선 찾기에나서온 지난해 말부터 예상돼 왔다. 그간 반도체 조립 및 포토마스크, 리드프레임 등 반도체 주변사업에서 탄탄한 배경을 갖고 있는 아남의 FAB시장 참여는 반도체관련 토털솔루션체제 구축을 위한 지극히 자연스런 수순으로 다만 어느 품목을 어떤 방식으로 생산할지가 관심사였다.

이런 의미에서 단독투자는 의외라는 게 업계의 반응이다. 타 그룹에 비해상대적으로 자금력이 달리는 아남의 입장이나 항상 지배자적 입장을 강조해온 TI의 기존 제휴행태를 감안할 때 대만의 TSMC와 같은 합작투자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김주진 회장은 당초 예상과는 달리 『일단 8천억원에 이르는 투자를 아남그룹 자체에서 조달하고 사업이 어느정도 안정된 후 대만의 TSMC와비슷한 형태의 제3자 합작방식을 고려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는 향후 FAB운영과 관련해 많은 것을 시사해주는 중요한 대목이다.

실제로 TI는 아남과의 협상 초기에 지분참여는 물론 미국쪽에 공장을 건립할 것을 강력하게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FAB공장 운영시 자신의 입김을강화하려는 의도에서였다. 그러나 아남은 당장은 힘들더라도 장기적으로 볼때 자신의 의도대로 FAB을 끌고가야 한다는 각오아래 자사의 입장을 관철시켰다는 후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I가 아남과 손잡은 것은 그간 20여년 넘게 다져온 협력관계가 크게 작용했다는 게 아남측의 설명이다. TI는 아남의 패키징사업초기부터 주요 거래처인 데다 특히 아남의 김 회장과 불의의 사고로 얼마전작고한 TI의 젠킨슨 회장은 돈독한 친분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비즈니스 관점에서도 TI는 별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다. TI 입장에선 급속하게 늘고 있는 DSP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어차피 새로운 FAB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아남과 손잡을 경우 자기 돈 하나 안들이고 FAB을 얻는 셈이다.

결국 이번 아남과 TI의 관계는 아남의 입장에선 반도체 일관가공기술을 축적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TI는 생산능력 확대와 함께 국내시장 선점효과를노릴 수 있는 대표적인 윈-윈(Win-Win)전략이라는 것이다. TI가 아남에게공여하는 기술이 회로선폭 0.35미크론의 DSP가공기술이라는 점도 이같은 관계를 뒷받침해준다. 뒤떨어진 세대제품이 아닌 현재 내지는 차세대 주력제품기술을 공여한다는 것은 아남을 진정한 파트너로 인정한다는 반증이다.

이에 따라 아남이 부천공장에 건설할 FAB은 TI 댈러스공장의 「DMOS FAB5」와 생산능력, 가공기술, 핵심장비 등 모든 시스템이 동일할 것으로 알려졌다. 아남은 이를 위해 이미 올 초부터 착실한 준비작업을 해왔다. 부천공장의 기반공사와 함께 지난 5월에는 현대전자 연구소장 출신인 박광오 부사장을 영입, 생산을 총괄하도록 했다.

아남은 이번 FAB사업의 성공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아남 경영층은 『기존 2백여개 해외 고객업체들이 FAB사업 진출로 인한 반도체 토털솔루션 생산체제를 하나같이 환영하고 있다』며 특히 DSP는 통신,가전, 자동차 등 각 분야로 수요가 확대되고 있어 어느 비메모리제품보다도성공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또한 그간 어려움을 겪었던 장비발주 및 핵심인력 확보상황이 최근 들어호전되고 있다는 점도 강조한다. 메모리가격 하락으로 인한 시황위축으로 반도체 3사의 핵심인력 유출이 늘고 있고, 최고 2년이 넘었던 스테퍼 등 핵심장비의 납기도 6개월 이하로 줄어드는 등 장비 및 인력수급 상황이 전에 없이 좋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하튼 이번 FAB사업 진출로 그동안 20년 넘게 추진해온 아남의 숙원사업은 이루어진 셈이다. 아남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98년에 다음 세대인 8인치웨이퍼 2만5천장 규모의 0.25미크론급 신규라인을 추가로 구축할 예정이다.

업계는 이와 관련, 『이번 아남의 FAB진출이 국내 비메모리사업을 한차원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고 평가하며 64MD램의 대응이 가능한 0.25미크론 FAB 구축 이후 아남의 행보에 벌써부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아남측은 업계 일각의 이같은 시각에 대해 한마디로 일축하고 있지만 「단독투자의속내」와 관련해 좀 더 두고 봐야한다는 게 업계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김경묵 기자〉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