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연중기획 SW산업을 살리자 (27);SW의 한국화

컴퓨터는 영어권 국가에서 처음 만들어져 발전을 거듭해왔다. 따라서 모든명령어의 처리체계가 기본적으로 한글이 아닌 영문 위주로 돼 있는 것은 당연하다. 또 날자나 시간 표기 방법 등도 모두 영어권에서 사용하 는 방식이며 한자변환기능 역시 아예 없고 데이터베이스 소팅 순서 역시 영문 알파벳에 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컴퓨터라 할지라도 기본적으로는 영문처리 체계와 영어권 문화환경과 생활습관이 우선 채택되며 한글과 우리 문화환경 등은 그다음 단계에서 이식된다. 우리나라의 사용자들이나 개발자가 컴퓨터에 대해 느끼고 있는 괴리감이나 이질감은 바로 기본적으로 이같은 현실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영어권 환경이 기본으로 채택된 컴퓨터를 한글화하고 다시 문서양식이나 각종 표기 등을 우리 문화와 생활환경에 맞게 전환하는 것을 한국화라 한다. 이같은 한국화 과정은 소프트웨어 수준에서 해결해야 되는 문제이다.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개발자나 업체들이 이 한국화 과정을 필수적으로거쳐야 함은 물론이다.

외국 소프트웨어회사들이 국내에 진출할 때 거쳐야 하는 한국화 과정이라는 것도 있다. 이 과정은 그러나 개발초기부터 한국화를 염두에 둬야 하는국내 소프트웨어회사들의 그것과 달리 이미 완성된 제품을 한글로 번역하는수준이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우선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회사들의 한국화 과정을 살펴보자. 소프트웨어개발과정은 크게 프로그램 부분과 한글처리부문으로 나뉜다. 한국화 과정은이 한글처리부분의 개발이 중심이 된다.

한글처리부분은 기본적으로 한글의 입출력(I/O)과 내부처리 한글코드의지원, 한글자모 추출 과정, 한글자모순 배열과 소팅, 한글로 작성된 데이터단위의 교환(인터체인지/익스체인지) 등의 기능을 말한다. 그다음 단계에서는 한글 응용프로그램과 시스템을 연결해주는 시스템API의 지원, 프로그래밍언어로 생성된 자원을 한글로 컴파일해주는 기능, 한글문서를 관리해주는기능, 한글 데이터베이스 지원 기능 등이 요구된다.

세번째 단계에서는 응용소프트웨어와 응용소프트웨어 간 상호운용성 기능,다국어지원 기능, 다국어 플랫폼 지원기능 등을 들수 있다. 네번째는 온라인한글사전, 철자검색기, 한글문법체계 등이며 이밖에 다섯번째 이후 단계로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 형태소나 의미론 기반의 한글 자연어처리, 음소와 음절 및 합성어 처리 기반의 한글음성인식 등을 꼽을 수 있다.

컴퓨터의 한글화 즉 소프트웨어의 한글처리 부문은 그러나 개발자의 능력이나 경험 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즉 산업표준이나 국가 표준과 같은 공통 규격의 지원이 필요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요구되고 있는것이 바로 한글 생성의 논리체계인 한글코드, 자모의 배열순서, 키보드 자판의 배치 등이다. 이런 것들은 국가 또는 산업 차원에서 표준 규격을 반드시정해 줘야만 하는 기본 요소들이다. 개발자나 사용자가 표준을 지켜주지 않을 때는 호환성이 생명인 컴퓨터 기능에 엄청난 혼란이 오게 된다.

최근 3년동안 잇따라 중국 연길에서 열린 코리안컴퓨터처리 국제학술대회에서 남북학자들 간에 채택하고 있는 4개 의제 중 3개가 바로 한글코드, 자모순 배열, 키보드 자판배치이고 보면 이 기본요소의 중요성은 재론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이 가운데 한글코드의 경우 현재 한글의 창제원리의 관점과 실용적인 관점에 따라 입장을 달리하는 수많은 규격들이 난립하고 있다. 정부가 정한 규격만도 조합형이니 완성형이니, 확장세트니 해서 5가지의 형태가 넘는다. 소프트웨어 개발사들도 나름대로 만든 규격들을 채용함으로써 개발과정에서의 이중부담과 함께 사용자들의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이 한글코드문제는 컴퓨터가 국내에 본격적을 보급되기 시작한 80년 이후현재까지 15년 동안이나 풀지 못하고 있는 난제이며 우리나라 소프트웨어산업이 안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취약점이기도 하다.

한편 외국소프트웨어회사들의 한국화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3.1」이한글화되던 93년까지만 해도 매우 고난도의 기술이 요구되는 과정으로 인식돼 외국회사들의 한국진출에 가장 큰 벽으로 여겨졌을 정도였다. 외국회사들에게 한글화가 고난도 기술작업으로 여겨진 이유는 크게 2가지이다. 하나는외국어(한글)에 대한 이해가 절대 부족했다는 점이고 두번째는 문자 하나에1바이트(7비트)값을 갖는 영문환경을 2바이트(16비트)값을 갖는 한글환경으로 변환하는 과정이 기술적으로 어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외국회사에게 이같은 벽은 이제 옛말이 되고 말았다. 마이크로소프트나 넷스케이프 같은 회사들은 이제 신제품을 개발할 때 처음부터 아예 한글처리환경을 포함시키고 있다. 따라서 한글화 작업이 최소 1주일 정도면 마무리 된다. 다국어 구현과정으로 불리는 이 개발 방식은 바꿔 말하면 국내소프트웨어회사 들이 처음부터 프로그램부분과 한글처리 부분을 염두에 두고개발에 나서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소프트웨어의 한국화는 그동안 외국 소프트웨어 업체에 비해 유일하게 우리가 강점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진 분야였다. 하지만 이제 그 분야까지도 외국회사들에게 주도권을 넘겨줄 지도 모르는 상황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서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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