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불경 읽기」. 최근 불교계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혜묵이라는 젊은 스님이 불교문헌자동화연구실을 차리고 그 첫 작품으로 어렵기만 한 불경을 CD에 담아낸 「디지털 불경」을 선보인 것이다.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것」이라는 명제를 받아 들인다면 혜묵스님의 작업은 사이버 시대,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불교 문화의 전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불교계는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주목 받고 있다. 21세기에는 「산중 불교」의 모습도 달라져야할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 청운동 연구실에서 후속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헤묵스님을 만났다.
그는불경의 의미를 이렇게 정의한다. 『책은 읽기 위한 것이다. 「읽는」것은 「배운다」는 것과는 아주 다른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불경은 「배우기」가 아닌 「읽기」위한 책이다. 책으로 된 불경을 읽지 않고는 가르침에 접할다른 방법이 없다. 경전은 「읽음」이라는 행위를 통해 가르침을 체험하는거의 유일한 통로이다』
혜묵스님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부처님과 대화할 수 있는』이런 불경을 디지털화 했다. 스님은 『가르침을 담는 매체가 바뀌는 것은 그가르침에 접근하는 방식의 변화를 수반한다』며 『불교문헌자동화는 새로운매체의 시대, 새로운 「읽기」가 시작되는 단초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컨데 디지털 불경을 통해 일반인들은 알고 싶은 구절을 간단한 조작만으로 컴퓨터 화면상에 불러 올 수 있고 그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자료를 동시에 찾아볼 수 도 있다. 그 구절과 연관된 다른 구절들을 차례로 대조하는 것도 가능하고 그것이 연상시키는 새로운 구절로 옮겨가면서 이해의 폭을 넓혀갈 수도 있다.
혜묵스님은 『불경스런 표현이 되겠지만 기술적 진보는 부처님의 가르침을전달해주는 「인공로봇 부처님」을 상상할 수도 있다』며 『문제가 생기거나어려움에 처했을 때, 가르침이 필요할 때 부처님께서 자상히 들려주시는 가르침을 이러한 로봇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환경도 언젠가는 현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혜묵스님은 불교문헌자동화연구실로 독립하기 전에 이미 해인사에서 「그유명한」 대장경전산화 작업을 수행했다. 교계에서는 당시 해인사도서관장이던 종림스님을 모시고 실무 작업은 거의 그가 주도했다는 평이다.
스님이 경전 자동화에 관심을 가진 것은 어려운 불경을 쉽게 읽어 보겠다는 순전히 「개인적인」 동기에서 출발했다. 그는 연세대 철학과 출신이다. 한문 벽자 투성이인 불경을 공부할 때 기계의 도움을 받으면 좀 쉽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선 해인사 종림스님과 함께 대장경의 목록, 해제를 정리하는 카드 작성 작업부터 했다. 혜묵스님은 특히 미국과 중국을 둘러보면서 충격을받았다.
미국은 벌써 인문과학 분야의 대표격으로 불교학자들이 불경의 전산화 입력 작업이 한창이었다. 수교 이전 몇년간 한학공부를 할 요량으로 방문한 중국에서의 충격은 더욱 컸다.
80년대 말 중국은 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 산하에 계산기실을 두고 30여명의 뛰어난 이력이 한문 문헌 전산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심지어 이들은한국의 대장경을 당시돈 5천만원만 주면 완벽하게 전산화시켜주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고 한다.
귀국후 대장경프로젝트에 착수하면서 몇가지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닥쳤다. 당시만 하더라도 교계에 컴퓨터 마인드가 부족,「스님이 수도나 할 것이지무슨 컴퓨터냐」는 비판도 있었다. 물론 충분한 예산 확보도 걸림돌 이었다.
기술적으로 가장 큰 장벽은 글자 코드문제였다. 대장경은 모두 3만8천자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사용할 수 있는 한자는 4천8백88자로제한되어 있다.이것은 국제 협약이다.
이에반해 일본은 7천여자, 중국은 6천여자, 대만은 1만3천50자를 확보하고있다. 이 때문인지 불경의 접산화 입력은 대만이 가장 앞서있고 전문학자들은 대부분 대만 것을 이용한다고 한다. 혜묵스님은 이같은 제도적 문제점은한사람의 불경 전산화 스님이 해결할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다른 현안은 불교전산화의 국제적 표준을 만드는 것과 여기서 한국 불교가 주도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절박감이다. 스님에 따르면 기존 인문과학 자료 전산화의 국제 표준을 이끌고 있는 주도 그룹은 서양의 영문학자들이다. 서구의 문학작품에는 적합할 지 몰라도 동양의 사상이나 한학을 다루기에는어설프다. 설사 이들 주도그룹이 동양관련 문헌의 특성을 인정, 표준안을 보완한다 하더라도 미흡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학자들을 중심으로 「세계전자불전협의회(EBTI)」를 결성했다. 스님은 EBTI를 통해 불교경전 표준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그 속에서주도 그룹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연내에 EBTI의 기관지를 국내에서 편집하는 방안을 추진할 정도이다.
현재 의장을 맡고 있는 버클리대학의 루이스 랭카스터 교수는 혜묵스님과우래전부터 교유해 온 인사이며 이번 디지털 불경 발간때 추천사를 써주기도했다.
혜묵스님은 「대한민국 최고」의 불경 전산화 전문가이지만 컴퓨터와 관련된 정규 교육을 받아본 적은 한번도 없다.그의 연구실을 장식하고 있는 다양한 컴퓨터 하드웨어와 최신 소프트웨어 자료들은 거의 독학으로 해결한다고한다.
스님의 표현을 빌리면 여기저기 귀동냥을 통해 오늘날의 수준에 이르렀다. 미국이나 중국에 체류할 때에도 어느 대학 어느 단체가 불경 전산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만 들리면 무작정 찾아갔고 「옆에서나마」 그들의 기술을열심히 익혔다.
혜묵스님은 연내에 인터넷 홈 페이지 구축을 시도하고 있다. 그는 『대부분의 경전이 최소 12MB분량에 해당하기 때문에 인터넷상에서 이를 일거 보기에는 매우 불편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이를 극복하는 방안을 연구중』이라고 밝혔다.
앞으로는 여러종류의 불교 문헌 정보를 네트워크를 통해 보급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작업이 될 것이라는 전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대장경프로젝트와 비슷한 걸림돌이 등장한다. 불경 전산화가 뛰어난 상업성이 있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재원상의 자생력이 부족한 것이다.아무리 스님이라도 현실은 현실인 것이다. 그는 아직은 주위의 도움으로 그럭저럭 버텨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혜묵스님은 『이미 「가상 부처님의 시대는 시작되고 있고 남들이 만들어준 가상 부처님을 통해 가르침을 읽게할 수는 없다』며 『부처님께 가까이가고자 하는 보다 많는 사람들의 관심과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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