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윤호 감독의 <유리>는 영상문화의 새로운 충격이며, 우리 영화의 실험의식과 가능성을 보여준 수작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관념적인구도(求道)의세계를 컬드의 영상언어로 해체해 놓은 작품이라 스토리 중심의 시각으로는따라잡기 어려울 뿐이다. 원작인 박상륭의 소설 <죽음의한 연구>가 그렇듯이 <유리>의 세계는 꿈이고 명상이고 신화의 세계이다.
따라서 영화 <유리>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구도의 정신 공간에서일어나는 것들이므로 현실 세계의 인과율이나 도덕률의 지배를 벗어난다.
관객은 현실의 세계에 있고 <유리>는 관념의 세계를 치닫는다. 그러므로두 세계의 괴리를 뛰어넘지 않으면 영화는 혼란스러운 암호 읽기가 된다. 현실에서 관념의 세계로 들어가는 패스포드는 화두(話頭)이다. 불교에서참선하는 이에게 도를 깨치게 하기 위해 내는 문제인 화두가 이 영화의 등뼈인 것이다. 영화 <유리>는 한 구도승이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깨우치기 위해서 치열하게 구도의 공간을 헤매는 40일간의 방황을그리고 있다.
첫째날, 청년 수도승 유리(박신양 분)는 이 화두 하나를 품고 세속의인연이 묻어있는 옷을 벗어던진 체 구도의 마을 「유리」로 들어간다는 설정은,인간의 내부에 소우주가 있고 수도한 바로 자기안의 우주를 탐험하는 것임을암시한다.
그뒤 수도승 유리는 기생하는 애꾸승을 남나 그들을 살해한다. 그리고 몸을 파는 것으로 수행하는 누이(이은정 분)와 유리 마을의 교활한 승려촛불승을 만나 얼크러짐으로써 살(殺), 도(盜), 음(淫), 망(妄),주(酒)의 계율 파괴를 자행한다. 죽음이란 무엇인가의 명제는 「마른 늪에서 물고기를 낚으라」는 실천적 화두로 변용된다. 이를 실천하면 불멸 영생의 깨우침을 얻으리라는 것이다.
유리가 혀를 끊고 눈이 멀어 죽음에 이르는 고행을 인간 존재의 본질로확산시키지 못한 점은 아쉬우나 전편에 넘쳐흐르는 젊은 감독의 패기를 높이사고 싶다.
<박상기(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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