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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원격탐사로 섬을 발견하다

『컴퓨터가 어떤 일을 했다』라는 뉴스가 신기하고 놀랍게 들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 터다. 인터넷으로 총선 개표방송을 중계하는 따위나본사와 원격지 지사간 컴퓨터 화상회의를 한다는 것은 지금도 그 자체만으로토픽감이 되곤 한다. 하물며 아직 컴퓨터가 생경한 70년대였음에야...

70년대 초반까지는 이를테면 사람이 할 수도 있는 일을 컴퓨터가 해냈다해서 놀라웠던 일이 많았다. 71년 서울시 교육위원회의 중학교 무시험 추첨같은 사건이 대표적이다. 사실 이때 무시험추첨 과정을 보면 컴퓨터가 갖는본래적 의미의 장점이 적용된 흔적은 거의 없어 보인다. 사람들은 단지 새로운 문명의 이기로 다가왔던 컴퓨터 그 자체에 놀라워 했던 것이다.

이같은 경외감은 사람들 사이에서 컴퓨터가 어느 정도 익숙해진 70년대 후반에도 지속됐다. 물론 이 때의 놀라움이란 예전의 그것과는 성격이 사믓 다른 것이었다. 이를테면 컴퓨터가 엄청난 힘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데 따른 놀라움 같은 것이었다. 끊임 없는 기술 개발에 힘 입어 기능과 성능이 확장됨으로써 컴퓨터 용도가 무한대로 뻗어나갈 것만 같은 기대감 같은 것이기도 했다.

70년대 초반에도 그랬지만 70년대 후반 역시 사람들에게 컴퓨터에 대한 경외감을 제공하는 역할은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가 전매특허였다. KIST는당시 전산시스템 연구 개발과 관련된 것이라면 주요 국책 사업은 물론 공공사업과 대형 민간 프로젝트까지 거의 도맡아 하던 곳이었다.

이때 KIST에는 성기수(현 동명정보대 총장)가 지휘하는 전산개발센터라는조직이 있었다. 이 조직은 67년 발족했던 전자계산실이 73년 전산계산부로승격된 후 다시 76년 센터 규모로 확대됐던 것이었다.

KIST전산개발센터가 70년대 초반에 수행했던 프로젝트로는 국산 컴퓨터 1호 「세종」과 한글 라인프린터 및 한글 잉크젯프린터의 개발 등 굵직굵직한컴퓨터 국산화 작업을 들수 있다. 대학 예비고사 채점업무·전신전화 요금업무·증권업무 등 공공기관 업무의 전산시스템 개발을 비롯 동아제약·삼양타이어·삼환기업 등 민간기업의 경영정보시스템(MIS)개발 프로젝트들도 대부분 이때 수행됐다. 업무전산화나 MIS 프로젝트들은 사실 미국이나 일본 같은선진국에서는 이미 보편화 된 것이었고 컴퓨터 사용 영역를 새로 개척하는분야도 아니어서 시스템 개발이나 경험 획득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이 때문에 이들 프로젝트는 당시 KIST 측의 주된 수익원이 돼주기도 했다.

KIST 전산개발센터가 70년대 후반기 들어 치중했던 프로젝트는 사람들에게경외감을 주면서 동시에 컴퓨터 활용 영역을 확대해 갈 수 있는,모험성과 연구성이 강한 프로젝트가 대부분이었다. 그도그럴 것이 70년대 후반에는 한국전산(KICO)·한국전자계산(KCC)·정부전자계산소(GCC)등 KIST전산개발센터에버금가는 민간·공공 정보처리센터들이 대거 자리를 잡는 시기다. 이들의 주요 업무가 전산시스템이나 MIS개발이었던 만큼 KIST는 새로운 영역을 찾아나서야 했던 것이다.

70년대 후반 수행했던 프로젝트들을 보면 국내 최초 의료정보시스템인 「메디오스(MEDIOS)」,중·고생을 거주지역 소재 학교에 배정함으로써 서울시교통란을 해소 해보려던 학생배정 시뮬레이션 연구,인공지능과 모델링 기법을 이용한 사료배합 시스템 「페미스(FEMIS)」,인공위성 자료를 정밀 분석하는 원격탐사 등 민간 업계로서는 엄두도 낼 수 없었던 최첨단 분야였다.

이 가운데 당시 사람들에게 풍부한 상상력을 제공했고 동시에 컴퓨터 활용역역을 크게 넓힌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원격탐사 프로젝트 하나를 소개해보기로 하자.

79년초 조직된 KIST의 원격탐사(Remote Sensing)팀이 대한민국 지도에 나타나 있는 서해안 일부 섬들의 위치가 틀려 있고 또 지도상에 기록돼 있지않은 섬들이 있다는 『놀라운 뉴스』를 내 보낸 것은 그해 9월 이었다.

KIST 전산개발센터 부장 성기수가 연구 책임자로 있는 원격탐사 팀은 서해안 경기도 옹진군 대부면 소재 「외지섬」 북동쪽 약 3km 부근 동경 1백26도40분 북위 37도 18분에 새로운 섬 하나가 존재 한다는 사실을 밝혀 낸 것이다. 원격탐사팀은 또 인근 동경 1백26도 37분 북위 37도19분 위치에 위치한「큰 가리섬」과 「작은 가리섬」이 지도상에 나타나 있는 곳보다 북쪽으로5백m 치우져 있다고 밝혔다.

이 뉴스는 당시 천문학자가 새로운 행성을 발견한 것 만큼이나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원격탐사팀이 새로운 섬을 발견한 것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 소속 탐사위성 「랜드새트 C(Land Sat C)」가 경기만 일대를 근접 촬영한 자료를컴퓨터로 정밀 분석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결과였다.

원격탐사팀이 NASA로 부터 인공위성 자료를 요청한 것은 서해안 연안 수심등을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나중에 간척사업 등과 같은 국토 활용 자료로 이용할 수 있는 지리 데이터베이스 작성이 보다큰 목표였다. 나아가 원격탐사팀은 한반도 전체의 지리 및 해양 정보 데이터베이스를 작성할 요량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특히 당시 서해안 일대에 걸쳐 대규모로 진행되던 국책 차원의 간척사업과 관련돼 안팎으로도 큰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정부는당시 간척사업이 국토 확장 내지는 활용에 대해 최상의 방안이라는 결론을내리고 적극 추진하던 중이었다.

위성사진을 이용한 원격탐사법은 72년 NASA가 지구위성 「ERTS 1」호를 쏘아 올리면서 처음 시작됐고 세계적으로 79년 4월 「랜드새트 C」가 발사된이후 본격화된 최첨단 기술이었다. 당시 신문들은 KIST 원격탐사팀의 위성사진 분석 기술이 세계적인 수준이었던 것으로 적고 있다.

이즈음 국내 신문들이 거의 매일 박스 기사를 통해 소개하던 「랜드새트 C」와 KIST 원격탐사팀의 컴퓨터 위성자료 해독법에 대해서 좀더 자세하게 알아보자. 당시 원격탐사팀의 일원이었던 Q씨의 회고.

『요즘 탐사 위성의 성능에 비하면 초보 수준에 불과한 것이지만 「랜드새트 C」의 위력은 대단했습니다. 제가 기억하고 있는 바로는 이 위성은 지상9백20km 상공에 떠서 지구 표면을 79평방m 단위로 촬영한 자료를 지구로 송신해 주었죠. 그런데 자료라는게 우리가 흔히 보는 사진 형태가 아닌 숫자였습니다. 색상을 2백56개로 나위어 검은색은 0,흰색은 2백55와 같은 식이었죠. 이렇게 날라온 자료를 컴퓨터가 분석에서 밝기와 채도가 표시된 정밀 사진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원격탐사팀이 발견한 새로운 섬이나 위치 조정 등은 이같은 컴퓨터작업 과정에서 얻어진 산물이었다. 일이 이쯤 되다보니 KIST측은 국토 활용 차원에서 원격탐사에 대한 정부 지원을 건의하게 되고 그에 앞서 KIST 자체의 최우선 시범 사업에 선정되기에 이른다. 다시 Q씨의 회고.

『새로운 섬의 발견 등은 KIST가 자체 연구비로 수행한 첫 사업이었습니다. 그러나 연구가 워낙 방대한데다 그 결과가 당장 돈으로 되돌아 오는 것도 아니어서 장기적 대책 마련이 필요했죠. 그 아이디어의 하나로 KIST소장이던 천병두씨가 이 프로젝트를 KIST 시범 사업으로 선정했던 것입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남다른 뜻이 있어서 였던지 KIST를 직접 챙겼는데 KIST측도 대통령 방문 때마다 뭔가 하나씩을 보여 주어야 했지 않았겠습니까. 시범사업이란 결과적으로 대통령 방문때 보여 줄 수 있는 일종의 전략(?) 프로젝트였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이 원격탐사 프로젝트에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정책적 지원은 따르지 않았지만 KIST 전산개발센터의 원격탐사팀은 이후에도 자체기술 확보를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기울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때 미국의 위성탐사 전문가인 제임스 밀러 박사나 일본 동경대의 무라이 교수 등이 초청돼 우리나라 원격 탐사 기술기반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 밀러 박사는 자신이 개발한 위성자료 분석용소프트웨어를 KIST의 「CDC 921」초대형 컴퓨터에 설치,원격탐사 노하우를한국 측에 전수한 것으로 가록되고 있다.

이같은 기술 전수에 힘입어 KIST는 80년대초 자체 연구비로 국내 최초의한반도 위성자료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냈으며 밀러 박사의 소프트웨어를완전 국산화하는데 성공하기에 이른다. 이같은 성과는 곧바로 이어진 수자원공사의 제주도 수자원분석·해양탐사·자원탐사·해양지도 제작·도시계획등 인접 연구분야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음은 물론이다.

한편 이때의 인연이 돼 원격탐사팀 연구원 가운데 김의홍(현 KIST지구환경정보연구부장)과 양영규(현 KIST 인공지능연구부장)가 각각 밀러 박사와 무라이 교수를 따라 일본과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된다. 두 사람은 모두 박사 학위를 받아 돌아왔으며 현재까지 이분야의 국내 최고 권위자로 명성을 날리고있다.

<서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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