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글 긴생각] 新바보상자

오늘날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린 텔레비전을 가리켜 바보상자라고 부르는일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TV 자체가 일방향적인 바보스러운 것이기도 하고, TV를 많이 보는 사람은 바보가 된다는 의미도 되며, TV는 바보들이 보는 것이라는 뜻도될 것이다.

얼마전에 미국에서 나온 통계를 보면 청소년들이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시간을 보내는 양태를 조사해 본 결과, 드디어 TV를 보면서 보내는시간보다 컴퓨터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은 것으로 나오게 되었다. 이런것을 두고 컴퓨터 시대의 개가라고나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미국에서 청소년들이 컴퓨터를 어떤 용도에 주로 사용하는지는 정확하게는잘 모르겠다. 하지만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청소년들이 TV가 아닌 컴퓨터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컴퓨터가 청소년들을 TV라는 바보상자로부터 구해냈다고 인정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의문이 생긴다. 과연 그들은 컴퓨터로 무엇을 하는 것일까. 컴퓨터를 가지고 하는 일은 모두가 창조적이고 미래지향적이고 건전한 것일까.

만약에 컴퓨터가 단지 밤새도록 채팅을 하고, 전략 게임 따위에 몰두하며,여자의 벗은 사진 따위를 수없이 다운로드받아서 감상하는 일을 위해서 사용되고 있다면 그것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일일까. 과연 컴퓨터는 TV로부터 청소년들을 구제해 낸 존재가 되는 것일까. 잘 생각해볼 일이다.

컴퓨터가 TV의 대를 이은 새로운 바보상자의 자리를 차지하지 않게 말이다. 도대체가 아직도 밤새워 채팅을 하거나 통신 바둑을 두느라고 한달에 수십만원씩이나 전화료를 내는 사람들이 수 없이 있다니 말이다.

컴퓨터는 TV와는 또 다른 측면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컴퓨터에 관해서는 도무지 참을성이 없어진다. 자기 실력도 주제도 잊어버리고무조건 빠른 속도의 제품만 원한다. 컴퓨터는 사람들을 돈에 대해서 바보로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씀씀이도 이유없이 커진다. 냉장고나 세탁기처럼 일상 생활에서 꼭 필요한가전기기는 몇십만원 정도 밖에 안되는데도 망서림 끝에 사게되면서도 컴퓨터를 살 때에는 그것이 어떻게 쓰일지, 그리고 얼마나 쓰일지도 생각지도 못하고 삼, 사백만원짜리를 산다.

그것도 대부분 최신의 최고급 기종으로 말이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닌데도컴퓨터를 위해서라면 돈을 쉽게 써버리는 현상은 어른이건 청소년이건 마찬가지이다. 어떤 어른들은 컴퓨터를 고급 장난감으로 여기고 사용하기도 한다. 잘 모르는 어른들은 자식들이 컴퓨터에 들어가는 물건을 산다고 말하면공부를 위한 참고서를 사는 것인양 잘도 사준다.

아직도 컴퓨터는 공부와 직결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 중독증에 걸려있거나 무감각증에 걸려있는 것 같다.

큰 화면의 화질 좋은 TV가 이미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신카드와 오버레이보드를 통해서 컴퓨터에서 TV나 비디오테입, 또는 Video CD에 담겨있는MPEG 압축 영화를 본다.

TV를 통하면 훨씬 큰 화면에서 더 좋은 화질로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굳이 그리 한다. 더구나 그런 주변기기들의 값은 TV를 새로 한 대 사는 것보다 더 비쌀 경우까지 있다.

사람들은 어떤 소프트웨어의 새로운 버전이 나왔다고 하면 도무지 참아내지를 못하고 꼭 최신버전을 고집한다. 아니면 꼭 한번은 사용해봐야 직성이풀린다.

왜 그리도 참을성이 없을까. 그리고 왜 그렇게 바보처럼 과소비를 해 댈까. 정말로 컴퓨터는 이제 TV의 뒤를 이어 새로운 바보상자가 되고 있는것일까. 훨씬 자기파괴적이고 소비지향적이며 폐쇄적인 바보를 만드는 기계인 것은 아닐까.

TV를 사지 못해서 자살했다는 말은 못 들어봤지만 얼마전에 가난 때문에PC를 사지 못해서 자살한 고등학생이 있기도 하다. 컴퓨터는 바보상자 중에서도 TV보다 더 무서운 바보상자인 셈이다. 더 건전한 정보사회로 나아가는 오늘에 있어서 우리 모두가 한 번씩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컴퓨터가신세대 바보상자가 아닌 창조의 상자가 되도록 하는 일이라고 하겠다.

김학준/컴퓨터컬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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