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재난의 시대 (48)

아이들이 누에고치처럼 줄줄이 눕혀진 흰 텐트 사이를 지나간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급히 왔다갔다 한다. 왜 거기에 들어와 있느냐고 묻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 그들 자신에게 둘러싸여 있는 어둠을 해결하는 문제가 더 급한 것이다.

잘된 일이다. 고비는 마지막으로 아들의 얼굴을 한번 보고 싶었다. 아침에 뉴도쿄로 떠나기 전, 잘 있으라는 인사를 하고 떠나고 싶었다.

고비는 아들의 텐트 안으로 들어간다. 그에게 가벼운 키스를 하면서 부드러운 숨결을 느낀다. 하늘 높은 곳에서 땅을 내려다보는 새처럼 트레보르를바라본다. 온몸에 전선이 지나가고 머리는 삭발이 된 채 누워 있다. 창백한 푸른 눈은 허공을 향해 무표정하게 떠 있을 뿐이다. 침대 옆의 모니터를 바라보며 고비는 몸을 부르르 떤다. 저것이 뇌파일 것이다. 화면에는 색의 용암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일종의 집단 콜라주이다.

"트레보르야!" 고비는 속삭인다. 아들의 눈썹은 뜨겁고 촉촉한게 열대의 태풍이 살갗 아래에서 몰아치는 것 같다. 그의 금발 머리는 땀으로 흠뻑 젖어 있다.

"내 말이 들릴지 모르겠구나. 아빠다. 아빠는 잠시 여행을 다녀와야 할 것같다. 곧 돌아올 게다. 사랑한다. 아빠가……." 계속할 수가 없다. 눈에 가득한 눈물이 분노와 뒤범벅이 된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놈들은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이것은 영혼의 대량 학살이 다. 남자, 여자, 아이들 할 것 없이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의식이 끊겼다.

누구든이런 짓을 한 자는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고비의 눈이 분노로 이글거린다. 다시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는 트레보르에게마지막 작별 키스를 한다. "잘 있어라……. 금방 돌아올께. 그리고 네가 어디 있던지 간에 우린 항상 함께 할 거다. 기다리거라. 너를 믿는다!"나가 는 길에 고비는 뮐러 교수와 맞닥뜨린다. 녹음기를 만지작거리는 게 그리 기분좋아 보이는 모습이 아니다.

"아, 고비씨, 이거 틀림없이 돼지죠?" "무슨 일입니까, 교수님?" 이제는 그 돼지들이 꿀꿀거리며 돌아다니는 것이 온 병원에 들리고 삐걱거리는 것 같은 목소리가 노래를 시작한다. 뮐러 교수는 어두운 목소리로 말한다. "핑크 플라이스의 곡입니다. 고비씨." "핑크 플로이드예요, 교수님." 뒤에서 어떤 여자가 그의 말을 정정한다.

"20세기의 영국 록 그룹이었답니다. 이건 "동물들"이라는 앨범에서 나온것같아요. 안그래도 지금 막 국회 도서관에서 곡 전체를 녹음해 오는 길이랍니다.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