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재난의 시대 (42)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던 여인. 무미건조한 일상에서 활활 타는 불속으로 뛰어들게 했다.

"누가 저를 죽이려고 해요?" 마치 스타킹이 나간 얘기를 하는 것처럼 차분하게 얘기를 시작했다. 사실그녀는 스타킹을 신고 있지 않았다. 투명할 정도로 흰 다리가 길게 뻗어 있을뿐이었다. "누가 아가씨를 죽이려고 한다고요?" 미소를 감추려고 안간힘을 쓰며 고비가 묻는다. 그녀가 자리에 앉는 순간, 고비는 재빨리 그녀를 검사한다. 그런데 아무 문제도 없다. 죽음에 대한 위협을 받는다거나 모르는 사람이 접근하거나 그러면 조금이라도 두려워하는흔적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그런 흔적이 없다. 그녀의 천성인 듯한 여유만이 보일 뿐이다.

"전 아버님의 유일한 상속자이거든요? 외동딸이거든요? 아버님은 다른 사람들처럼 대(대) 이을 아들을 입양하진 않으셨어요. 그런데 아버님의 사업이 번창하니까 점점 적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어떤 면에서는 좋은 일이죠. 오노 산업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고 있으니까요." "그래서요?" "경쟁사들 중에서는 아버님 회사를 합병하려고 하는 회사들이 있답니다.

큰그룹들있잖아요? 사업이라기보다는 당파 같은 큰 동맹체들이랍니다. 다른 그룹에 도전하고 싸우고 흡수하는 게 그들의 일이라고나 할까요?" 그녀는 다리를 꼬았다. 꽃병에 꽂힌 두 줄기의 꽃 같은 다리다.

"소데스카?" "아니, 일본말 할 줄 아세오?" "스코시, 조금이요." "흠" 하고는 마치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한 것 같은 소리를 낸다.

"만약 아버님께 뒤를 이을 사람이 없다면 합병하는 것도 훨씬 쉬울 것이고그러니 저를 노리는 것도 당연하지 않겠어요? 아버님은 마음이 안 놓이셔서제가 보호받아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신답니다." "예술 학교에 다니신다고요? 그게 아버님 사업을 물려받는 데 도움이 되나요? 하버드-게이오 경영학과나 뭐 그런 델 다녀야 하는 것 아닙니까? 무슨 뜻이냐면 말입니다. 아버님의 경쟁사들에게 정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시느냐는 겁니다. 하여튼 학교에서는 뭘 배우시죠?" 그녀는 몸을 굽힌 다음, 핸드백의 줄을 잡아당긴다. 그녀는 가방에서 작은 꾸러미를 꺼낸다. 포장을 여는 그녀의 눈이 반짝거린다.

"이게 제가 하는 일이어요. 오리가미라고 아세요? 종이공작 같은 거죠. 크레인이나 꽃게, 뭐든 만들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