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재난의 시대 (28)

호주머니에서 전화기가 신호음을 내지만 고비는 이내 모르는 척한다. 틀림 없이 기무라일 것이다. 그를 그렇게 쉽게 놓아줄 사람들이 아니다. 더군다나아까 그것까지 본 지금에는.

고비는 자기 칸을 휙 둘러본다. 거의 텅 비어 있다. 한 쌍의 남녀가 소형등산 텐트 같이 생긴 개인용 감각음 시키보 안에 앉아 있다. 꼭 껴안고 발을 흔드는 모습이 가상의 무대 위에서 춤 연습을 하는 것 같다. 그 옆에는 비쩍 마른 남미계 사람이 낮은 뇌파(뇌파)를 타고 있다. 챙이 헤드세트(headset) 로 연결된 게 보딩중인 모습이다. 가상 공간 어디선가 일어나는 걸 흉내내는 몸짓 하나하나, 전에 본 적이 있는 모습이다.

그 변화가 벌써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어딘가에 연결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은 고비 옆에 앉아 있는 산사나이다. 꽤 터프하게 생겼다. 챙 넓은 카우보 이모자에 가죽 조끼만 걸친 맨몸이다. 아니, 그런데 그 자의 어깨에 앉아 있는것은 족제비가 아닌가? 샌프란시스코의 얌전한 애완동물처럼 귀걸이까지 금으로 달고 있다.

남자의 팔에 나 있는 길게 긁힌 자국이 아무래도 족제비의 날카로운 발톱 짓인 것 같다.

고비는 갑자기 코를 킁킁거린다. 퓨우! 어디선가 사향냄새가 진동을 한다.

지겨운탑승이 될 것 같은 조짐이 벌써부터 환하다.

산사나이가 마침내 입을 연다.

"그거 안 받을거요?" 고비의 전화기가 아직까지도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네, 곧 그칠 겁니다." 그 산사나이가 얼굴을 찡그린다. 앞니도 몇 개 나가고 온 얼굴에 칼자국투성이다. "그놈의 것은 성가시기만 하죠?"하더니 술병을 들어올려 벌컥벌컥 마신다.

어쩐지입에서 싸구려 술 냄새가 난다 했더니…….

"노먼, 좀 마실래?" 그는 털 달린 친구에게 입을 벌려준다.

"얘는 내 친구 노먼 록펠이오. 밍크나 마르모트랑 비슷한 족제비라오."자 못 자랑스럽게 설명을 덧붙인다.

아무 대꾸가 없자 그는 다시 얼굴을 찡그리며 고비의 호주머니를 가리킨다. "숨이 넘어가는 것 같은데요?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그러오? 사장 부인이 라도 꿰차고 도망치는 길이오?" 그가 낄낄거리고 웃는다.

고비는 여전히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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