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중소 부품업체 설자리 없다

갈수록 그룹 계열사들을 중심으로 한 거래의 벽이 두터워지면서 전문 전자 부품업체들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전자부품산업의 계열화 조짐과 함께 전문업체 인수를 통한 중견 그룹사들 의잇따른 전자산업 참여도 이같은 추세를 가속화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중소 전문업체들의 영역이었던 전자부품 분야에까지 매수.합병(M&A)의 바람 이몰아쳐 전문 중견 부품업체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삼성.LG를 중심으로 한 매머드 전자그룹사들은 이미 반도체.디스플레이 등대기업 영역의 사업은 물론이고 그동안 전문업체들이 주류를 이뤄온 일반 범용부품 분야에까지 발을 넓히고 있다.

이미 전자제품의 기반이 되는 PCB분야에서 LG전자와 삼성전기가 전문업체 들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으며 저항기나 콘덴서류.하이브리드IC.코어 등 상당 부문에서도 대기업들에 의해 시장판도가 바뀌고 있다.

국내 부품산업은 총량적으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대호황을 맞고 있으나 전반적인 쑈부품업체들의 상황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지난해 중반이후 호황을 만끽했던 일반 부품업체들은 올 하반기 들어 예상 치못했던 수요감소로 고전하고 있는 실정이다. 범용 부품업체들의 경우 대부 분포화기로 접어든 가전제품을 비롯한 민생용 기기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데다 세트업체들의 해외생산 가속화로 국내부품 조달이 날이 갈수록 줄고있기 때문이다. 세트업체들의 부품구매가 계열 부품업체로 몰리는 것도 한 요인이 되고 있다.

대기업 또는 계열 부품업체들의 상황은 사뭇 다르다. 반도체.디스플레이업체와 주로 그룹 계열사들이 주축이 된 칩부품을 비롯한 첨단 부품업체들의 경우 지난해에 이어 호황을 만끽하고 있다. 반도체 3사는 이미 반도체 매출 만도 수조원을 넘어섰고 디스플레이 업체들 역시 조단위를 바라보고 있다.

삼성전기를비롯한 매머드 종합부품업체들 역시 올해 매출이 1조를 넘어설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반도체나 디스플레이를 제외한 대기업 계열 부품업체들의 이같은 호조는 이들이 칩부품을 비롯한 첨단부품을 생산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계열사를 중심으로 한 구매행태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실제로 계열 세트업체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상당수의 계열 부품업체들이 생산 량을 대폭 확대하고 있으며 이미 시장에서도 전문업체를 제치고 선두자리를 넘보는 업체들도 적지 않다.

그룹 계열사를 우선 대우하는 국내 전자업계의 풍토를 감안할 때 대기업 계열 부품업체들의 성장과 전문업체들의 상대적인 위축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들어서는 그동안 건설.제지.화학을 비롯한 비전자 부문에 주력해온 중견 그룹사들이 전자산업에 쉽게 참여하는 방편으로 기존 전자 전문업체들 의인수에 경쟁적으로 나서 대기업 중심으로의 구조재편 추세에 기름을 붓고있다. 올해 들어서만도 제지를 기반으로 성장해온 한솔이 카오디오데크 전문업체 인한국마벨을 인수한 데 이어 옥소리와 광림전자를 잇달아 인수해 주목을 받았으며 건설을 중심으로 해온 거평그룹은 반도체 조립업체인 한국시그네틱스를인수 전자산업에 발을 들여 놓았다. 그동안 카오디오 등 음향부문에 주력해오다 지난해부터 반도체 장비에 까지 발을 넓힌 해태도 올들어 인켈에이어 최근 나우정밀까지 인수、 음향 및 통신시장에 본격적으로 가세했다.

중견 그룹사들의 잇따른 M&A를 통한 전자사업 참여와 대기업 계열사들의 부품사업 강화는 투자력을 바탕으로 국내 부품기술 경쟁력을 높이는 긍정적 인측면이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이를 비난하거나 막을 수 있는 방법도 없다. 그러나 국내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사업에도 어느 정도의 윤리가 있고공존공생의 원칙이 있어야만 장기적으로 더 큰 결실을 거둘 수 있게 된다.

중소업체와의역할분담을 통한 협력을 바탕으로 하는 구도가, 모든 것을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은 이미 선진국에서도 입증 된 바 있다.

현재 일고 있는 대기업들의 사업영역 확장과 M&A가 자칫 기존 전문업체들 을사장시키고 스스로도 수익성을 이유로 투자에 소홀함으로써 가뜩이나 취약 한부품산업을 더욱 황폐화시키지나 않을까 우려된다. 한 분야에 사활을 거는중소 전문업체와 모기업을 등에 업고 사업에 임하는 자세는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의 신규사업 참여에 대해 "문어발식 확장" 운운하는 것은 이제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그러나 전반적인 국내산업의 여건을 감안해 가능한 한, 기존 중소기업들이 틀을 굳혀놓은 부문보다는 투자여력을 바탕으로 전문업체 들이 하기 어려우면서도 하지 않으면 안될 취약분야를 육성하는 것이 대기업 으로서의 책임성과 자존에도 걸맞는 일이 아닐까 싶다.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