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부품산업의 발자취 (164);저항기(6)

국내 전자부품산업의 본격적인 개화는 고 곽태석(81년 작고) 한국전자 창업 주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저항기산업 역시 마찬가지다.

전자수출조합(전자공업진흥회의 전신) 초대이사장을 역임했던 고 곽태석회장 은 21년 경북 선산태생으로 박정희 전대통령과 동향이다.

31년 도일했던 곽회장은 일본 관서공업학교와 일본고등무선학교를 거쳐 잠시 일본 오리엔탈무선공업(주)에서 근무하다 중앙대학 상과대학에 입학한다.

곽태석회장은 한국전자 회장 재직시절 "전자공업이야말로 조국의 경제를 일으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될 분야"란 생각을 자신의 학창시절과 연관지어 설명 했다고 관계자들은 전한다.

48년 중앙대학을 졸업한 곽회장은 같은 해 자신의 관심분야와는 전혀 무관한 택시회사(광양택시)를 설립、 사업에 투신한다.

광양택시에서 실무경험과 경영을 터득했던 곽회장은 57년 광양택시(주)를 넘기고 수정발진자와 정밀축수석을 생산하는 광양정밀(주)를 설립、 전자분야 에 첫발을 딛는다.

광양정밀은 후일 국내 전자부품산업의 기술축적은 물론이고 일본의 자금유치 와 첨단기술도입의 거점역할을 함으로써 곽회장 개인뿐아니라 한국전자공업 사의 일대전환점으로 기록된다.

곽회장은 광양정밀에서 뛰어난 사업수완으로 창업 2년만에 수정진동자를 일본내 6대메이커의 대열에 올려놓았으며 정밀축수석은 독점메이커로 부상한 다. 곽회장이 일본에서 사업기반을 충실히 다지고 있을 때 국내에서는 제3공화국 이 출범한다.

박정희대통령은 정치적 혼란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자 정부주도하에 경제개발 5개년계획(62년)을 수립하고 이를 위해 일본과의 국교를 재개한다.

한국수출산업공단이구로동에 건설되는 것도 이즈음의 일이다.

일본에서 광양정밀로 사업에 성공한 곽회장은 그 첫작품으로 한국수출산업공 단 첫입주업체인 싸니전기공업(66년)을 1백% 출자해 설립한다.

수정발진자와 정밀축수석의 생산에 착수했던 싸니전기공업의 경영이 본궤도 에 진입하자 67년 2월 곽회장은 동향출신 국회의원인 김봉환과 함께 청와대 로 박대통령을 찾아간다.

이자리에서 곽회장은 반도체공장설립의사를 전하고 지원을 요청하며 박대통령 역시 "국내 전자산업의 육성을 위해서는 마쓰시타.NEC.히타치.미쓰비시.

도시바중하나를 한국에 끌어와야 된다"며 전자산업육성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한다. 곽회장은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수일후 김동조 당시주일대사、 민충식공사와 함께 도시바의 토광민부사장을 만나 설비지원과 기술지원약속을 받는다.

곽회장은 도시바와 공동으로 69년 실리콘 트랜지스터를 생산하는 한국도시바 한국전자의 전신)를 구미공단에 설립한다. 한국도시바는 도시바(70%)와 곽 회장외 6인(30%)이 자본금 2억1천4백만원을 출자해 설립했으며 초대사장은 곽태석씨가 맡는다.

한국도시바에서 가능성을 확인한 곽회장과 도시바는 또다른 작품을 구상하고 72년 한국도시바 공장부지에 한국테레비(81년 한국도시바와 합병)를 설립한 다. 한국도시바와 한국테레비의 흑백TV사업성공은 도시바의 일본내 협력회사들에 의외의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한국테레비의 성공은 도시바전자부품 협력업체들의 한국진출을 부추겼다.

한국호쿠리쿠(현한륙전자)、 한국다구치(현한국트랜스)、 한국무라타전자(현 신한전자)、 대한노블전자、 미우키전자(현경인전자)、 한국음향、 한국트라콘 한국금속、 구미포장(현태화산업)、 (주)KYC 등의 전자부품회사가 이 범주에 들어간다.

당시 일본의 도시바 협력회사들은 한국시장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한국진출 및 파트너선정 등 세부문제를 곽회장과 의논했고 곽회장은 이를 일부는 자신이 나머지는 일본내 교포친구들에 연결하여 협력관계를 맺도록 했다.

곽회장은 국내 전자부품산업의 초창기를 일군 공으로 78년 국민훈장 동백장 을 받는다. <조시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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