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명해질 뻔한 대표적인물 두사람이 있다. 한 명은 영국인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인이다. 이 둘은 서로 만난 일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지만 한쌍으로 간주할 수 있다. 피터 베스트는 링고 스타가 들어오기전 비틀즈의 드러머였으나, 비틀즈가 유명해지기 바로 전에 그룹을 떠나야만했던 사람이다. 제프 라스킨은 스티브 잡스에 앞선 매킨토시 컴퓨터의 아버지였으나 매킨토시가 인기를 얻기 전에 역시 떠나야 했던 사람이다. 베스트 와 라스킨의 업적은 하찮은 화젯거리로 어쩌다 떠오를 뿐 운명의 장난으로 "어떻게 될 수도 있었는데"라는 아쉬움속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라스킨의 경우 잡스가 매킨토시의 창시자로서 칭송을 받게되었다는 것은 오랫동안 그의 가슴에 사무치는 일이었다. 응당 자기에게 돌아와야할 공을 주장하기 위해 라스킨은 언론과의 인터뷰나 편집인들에게 편지를 보냈지만, 그것은 마치 공원에서 눈이 마주치는 것을 피하는 행인들에게 소리를 질러대는별난사람의 경우처럼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라스킨이 아무리 열심히 세인의 관심을 끌려고 애쓰더라도 일반 대중의 머리엔 쉽게 사용할 수 있고 적절한 가격의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어낸 최초의 인물로는 언제나 스티브 잡스가 떠오르게 되어있는 것이다.

매킨토시의 태동기를 명확히 밝혀주는 것은 라스킨의 명예를 회복시켜준다는차원에서뿐 아니라 잡스와 그후 넥스트사 제품으로 어떤 것들이 나왔는지를잘 이해하기 위해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매킨토시는 PARC의 야심적인 비전과 제록스사의 "스타"와 애플사 "리사" 의 실패를 넥스트 컴퓨터사의 유토피아적 이상주의와 연결해주는 고리다. 스티브 잡스와 넥스트사의 직원들 은 자신들의 역사에 너무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다시말하면 자신의 역사에 너무 사로잡혀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은 같은 성공의 결과를 거둘지라도 그에 이르는 비결을 일반화시켰던 것이다.

매킨토시의 모태는 79년에 있었던 잡스의 제록스사 연구소 PARC의 방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방문은 앞서 살펴봤듯이 그저 언뜻 본 것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게다가 잡스가 PARC를 방문한 이후 줄곧 온 몸에받았던 후광은 그의 것만은 아니었다.

PARC개발품의 가치를 가장 먼저 알아내고 잡스에게 방문하도록 권한 사람은 바로 제프 라스킨이었다. 라스킨은 잡스보다 12살 연상이었으며, 31번 째로 애플사에 들어온 사람이었다. 그는 철학에서 음악, 시각예술,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조예가 깊어서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교직을 갖기도 하였고, 또 같은 이유로 교직을 박차고 나오기도 했다. 그는 기구를 타고 총장관저위를 날라서 대학을 빠져나왔는데, 이것을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라스킨은 애플사에 들어가기 전 PARC근처에 있는스탠퍼드 인공지능연구소에서 일하면서 PARC의 연구활동에 대한 것을 알게 되었다. 훗날 애플사에서 그가 잡스에게 PARC를 방문하여 그곳의 연구원들이 무슨일을 하고 있는지 직접 보라고 설득하는데에는 무려 1년이 넘게 걸렸다.

라스킨은 잡스가 PARC를 방문하기 전부터 매킨토시개발을 추진했다. 그는 마이크 마쿨라애플사 회장에게 비싸지 않은 패키지에 그림과 정규 텍스트 를 혼합시키는 새로운 모델의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마쿨라 회장은 그런 기계가 5백달러에 팔릴 수 있도록 설계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라스킨은 일주일간의 심사숙고끝에 그 컴퓨터의 가격은 1천달러가 되어야 할것이라고 대답했다. 화상 이미지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컴퓨터는 그래픽 전문 워크스테이션으로, 당시 가격은 수만 달러에 달했다.

마쿨라의 격려에 힘입어 라스킨은 개발작업에 착수, "매킨토시 도큐먼트"라 는 노트에 설계계획을 적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잡스와는 전혀 상관없는 계획이었는데, 당시 잡스는 훨씬 더 고도화되고 값비싼 컴퓨터 "리사" 에열중하고 있었으며, 매킨토시 계획을 방해하려하기도 했다. 그의 방해행위는 마쿨라와 마이크 스콧 애플사 사장에 의해서 저지당하긴 했지만, 라스킨은 잡스의 방해를 피하는데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라스킨이 매킨토시 개발 프로젝트에 함께 일하기 위해 처음 선발한 사람중에는 그의 오랜 친구이자 샌디에이고 극단에서 같이 일한 적이 있는 가이 버드 트리블이 있었다. 트리블은 라스킨처럼 전혀 분야가 다른 서너가지의 직업 경력을 가지고 있던 박학다식한 사람이었는데, 그가 애플사에 들어온 것은뜻밖의 수확이었다.

80년 당시 그는 시애틀 소재 워싱턴대학에서 신경생리학 석.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중이었다. 당시 트리블은 라스킨이 애플사에서 첨단기술의 저가 개인용 컴퓨터를 개발하기 위한 연구팀을 구성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애플사를 방문하여 약 4백페이지에 달하는 매킨토시 연구자료를 보고는 너무나 흥분한 나머지 자신의 의학연구에서 잠시 떠나 매킨토시 그룹에 합류하기 로 결정하게 되었다. 애플사에서, 또 그 이후 넥스트사의 공동 설립자중 한 사람으로서 신경생리학자 트리블은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탁월한 능력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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