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에 제시한 국가핵심기술 신규 지정·변경안은 디스플레이 패널사와 관련 부처인 국정원 의견이 중점적으로 담겨있다. 아직 장비사 입장까지 반영한 버전이나 구체 지정 기술을 도출한 방안은 마련되지 않았다.

디스플레이 패널사와 국정원이 제안한 내용 그대로 국가핵심기술 신규 지정·변경이 이뤄질 경우 한국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장비기업 대부분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증착·봉지, 화학기상증착(CVD) 장비를 비롯해 플렉시블 OLED에 특화된 열처리장비, 레이저리프트오프(LLO), 레이저어닐링(ELA)과 수리·검사·측정, 후공정 모듈장비에 이르는 대부분의 공정 장비가 수출 시 정부 심의를 거쳐야 한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중국에 OLED 관련 장비를 수출하는 기업 대부분이 영향권에 속하게 된다. 에스에프에이, AP시스템, 케이씨텍, 테라세미콘, 아이씨디, 주성엔지니어링, HB테크놀로지, 선익시스템, 필옵틱스, 디엠에스 등 대부분 주요 장비 기업이 해당한다.

패널 제조사도 영향을 받는다. 특히 OLED 전공정뿐만 아니라 모듈조립공정 라인을 해외에 설립할 때도 정부 심사를 받아야 한다.

지난해 LG디스플레이가 광저우에 8.5세대 OLED 공장을 투자할 당시 정부는 △생산 장비의 70% 이상을 국산으로 사용할 것 △정보 유출 방지 시스템을 갖출 것 △일정 기간마다 정보 유출 방지 시스템 점검을 받을 것을 조건으로 승인했다. 앞으로는 전공정뿐만 아니라 후공정 설비를 투자할 때도 이와 유사한 조건을 갖춰야 할 가능성이 생기는 셈이다.

업계는 모든 OLED 장비가 대상이 되지는 않더라도 일부가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추측했다.

다만 수출에 제동이 걸리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새로 지정·변경할 국가핵심기술을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수출 심사에 걸리는 시간 최소화 △해외 장비 경쟁사와의 역차별 방지 등에 대한 대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디스플레이 업계는 이번 기회를 바탕으로 인력 유출 방지를 위해 정부뿐만 아니라 관련 대기업의 적극적인 대책도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부족한 기술력을 보강하고 대학에서 인력을 양성하는 등 전문인력을 활용하는 다양한 장치가 필요하다고 봤다. 이를 위해 정부의 정책 지원은 물론 대기업도 적극적인 전문인력 활용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일례로 반도체 기업 SK하이닉스는 우수 엔지니어가 정년이 돼도 계속 근무할 수 있는 제도를 올해 도입한다고 발표해 화제가 됐다. 해외 경쟁사로 핵심 인력이 빠져나가는 것을 방지하고 자사 기술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파격 조치다. 올해 정년을 맞는 엔지니어와 개발 직군 직원을 선발하기 위해 별도 심사 기준을 마련키로 했다.


배옥진 디스플레이 전문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