팹리스 매출규모 우리는 ‘2조원’인데 ‘32조원’ 훌쩍…위상추락 위기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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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시스템반도체 시장 규모가 한국보다 무려 16배나 큰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이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선 초강국 반열에 올라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 시스템반도체 업계의 매출이 10년째 정체된 데 반해 중국은 연간 약 20%를 보이며 수직 상승하고 있다. 이런 추세면 격차는 갈수록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이 메모리마저 추격할 태세여서 '반도체 코리아'의 위상은 빠르게 추락할 것으로 우려된다.

7일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시스템반도체로 대표되는 국내 팹리스 반도체 업계의 매출 규모가 2조원 안팎인 것으로 추정된다. 협회 관계자는 “한국 팹리스 업계는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중반까지 매출액 합계가 매년 두 자릿수 이상으로 무섭게 성장했지만 2007~2008년부터 정체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팹리스 업계의 매출 규모는 2006억위안(약 32조8000억원)으로 추정됐다. 이는 전년 대비 22% 성장한 수치다. 트렌드포스는 중국 팹리스 업계가 올해도 약 20% 고성장, 전체 매출 규모가 2407억위안(39조50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 팹리스 업계의 매출이 올해도 답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격차는 20배 이상 확대된다.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 사업 부문인 시스템LSI의 연매출(7조원 추정)을 추가하더라도 중국과의 격차는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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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외형 성장뿐만 아니라 내실 성장에서도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 팹리스 업계는 2000년대 초·중반에 저가 제품으로 시장에 진입했다. 최근에는 프리미엄 분야에서 성과를 보이고 있다. 화웨이 자회사이자 중국 최대 팹리스 업체 하이실리콘은 스마트폰용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10나노 공정으로 양산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387억위안(6조3500억원)으로,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와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왔다.

ZTE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는 개화기를 맞이하고 있는 협대역사물인터넷(NB-IoT) 칩 솔루션 개발을 완료했다. 하이실리콘을 포함해 칭화유니그룹의 스프레드트럼 RDA와 다탕은 5G 네트워크용 칩 솔루션을 출시했다. 화다세미컨덕터는 스마트카드, 보안칩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구딕스는 스마트폰 지문 인식 칩 솔루션 시장에서 업계 선두 주자인 스웨덴 핑거프린트카드(FPC)를 조만간 따라잡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내 매출 톱10 팹리스 업체 가운데 칭화유니그룹의 스프레드트럼 RDA를 제외하면 대부분 높은 한 자릿수에서 20~30% 고성장을 일궈 냈다. 프리미엄 제품군 매출 확대가 주효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 팹리스 톱10 가운데 대부분은 지난해 연간 매출이 전년 대비 역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추세는 수년째 계속되고 있다. 이 때문에 제품 포트폴리오, 고객사, 공략 시장 확대 전략을 펼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내 팹리스 업체 대표는 “2000년대 초·중반에 잘나간 한국 팹리스 업체는 하나의 제품군, 하나의 고객사, 하나의 지역 시장에 치중하다가 환경이 바뀌면서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이 가운데 여러 기업이 퇴출됐다”면서 “근본 체질 개선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학계에선 전문 인력 숫자가 과거 대비 크게 줄었다고 호소했다. 시스템반도체 분야 육성 연구개발(R&D) 정책이 지난 정부에서 사실상 전무한 것이 주된 이유로 꼽힌다. 시스템반도체 설계 분야는 이미 비인기 분야로 전락했다.


송용호 한양대 전자공학부 교수는 “한국은 메모리 강국이지 반도체 강국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하게 인지해야 한다”면서 “최근 호황으로 축포만 터뜨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라고 조언했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