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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 선진국으로 불리는 일본과 독일은 전통제조업을 4차 산업혁명에 발맞춰 미래 제조업으로 혁신하며 체질을 강화했다. 일본과 독일도 글로벌 금융위기와 경기 침체는 피하기 어려웠다. 축적된 과학기술 힘과 탄탄한 내수시장을 가졌지만 시대적 변화에 선제 대응은 하지 못 했다. 위기에서 가장 먼저 손을 댄 것은 일자리 창출 보고인 제조업 중심 혁신이다. 일본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첨단기술 기반 산업에서 활로를 찾았다. 독일은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한 산업정책으로 경제 부활에 성공했다. 반면에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 유럽의 전통 제조강국은 잇달아 혹독한 구조조정을 해야만 했다.

◇일본 '장인정신'만으로 부족하다

1990년대까지 일본은 세계 최고 전자산업 강국이었다. 일본 소니와 파나소닉, 샤프 등은 세계 전자업계를 주름잡는 브랜드였다. 전자산업뿐만 아니라 자동차, 조선, 반도체, 철강 등 당시 일본의 제조업은 최전성기를 구가했다. 디지털 기술이 등장하면서 승승장구하던 일본 전자산업도 몰락의 징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 버블붕괴와 동아시아 외환위기는 일본의 회복을 더디게 했다. 후발주자였던 한국과 중국에 따라잡히기 시작했다.

새로운 기술인 인터넷과 모바일에 대한 투자나 연구개발이 부족했던 것은 일본 산업에 치명타가 됐다. 이 시기 전자산업 부가가치가 1997년 피크 시점에서 2012년까지 45.8%나 크게 감소했다. PC와 TV가 먼저 위축되고, D램, LCD 등이 차례로 경쟁국가에 따라잡혔다. 이 사이 한때 일본 3대 전자업체로 불렸던 샤프는 애플 협력업체로 유명한 대만 폭스콘(훙하이정밀)에 인수됐다. 도시바는 혹독한 구조조정을 겪으며 반도체 사업부를 매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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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분야 등 경쟁력을 가진 산업 연구개발을 계속했다. 이는 제조, 장인정신을 의미하는 '모노즈쿠리'로 회자된다. 일본 경쟁력은 기업용(B2B) 품목에서 나온다. 전자산업 기초가 되는 소재와 부품은 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했다. 이는 경쟁국가나 기업이 하루아침에 따라가기 어려운 축적된 경험과 지식 기반 산업이다. 모노즈쿠리가 빛을 발하는 분야다. 파나소닉은 차량용 전자부품 회사로 변신했다. 한때 소비자용(B2C) 음향영상(AV)기기 브랜드 명성은 사라졌지만, 세계 최대 전기차 배터리 공급업체가 됐다.

일본 정부는 1999년 3월 '모노즈쿠리 기반기술진흥기본법'을 공포, 모노즈쿠리 기반 정책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제조업 기반 기술을 지속 강화하고 기술자 양성과 기술 향상을 목표로 종합적 발전 계획을 세우고 있다. 방대한 분량의 백서도 제작한다. 최근 여기에 스마트 팩토리 지원 사업까지 추가됐다.

장인정신만으로 부족했다. 산업 전반에 디지털이 적용됐고 연결된 세상이 됐다. 스마트 팩토리는 곧 생산설비 유연성 확보와 데이터베이스화다. 일본 기업은 생산성 향상에 매달렸다. 후발주자를 따돌리기 위해서는 부가가치를 높여 제조업에 경쟁력을 높였다. 경제버블 시기에 줄였던 정보화 예산과 설비투자도 강화했다. 소비자 관점에서 제품, 서비스, 신규 사업을 기획하는 '고토즈쿠리'가 강조됐다. 무조건 신기술을 좇는 데서 나아가 고객 요구를 읽고 제품 개발 전 단계에 적용했다.

이는 사물인터넷(IoT) 기기가 늘어나면서 고객 맞춤형 제조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일본은 실제로 최근 IoT와 빅데이터, 인공지능(AI) 기술 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클라우드, 로봇, 센서 기술 등에 전방위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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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 차원 노력도 이어졌다. 2013년부터 아베 정권은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국가 차원 ICT 산업 정책을 매년 개정하며 독려에 나섰다. '세계 최첨단 ICT 국가 창조 선언'이 대표적이다. 과거에는 부족했던 공공서비스와 융합산업에 대한 ICT 적용을 적극 내걸었다. 일본은 특정 산업 활성화에 중심을 둔 정책이 아닌 국민 삶 향상을 위해 ICT 수준을 높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고령화 사회, 동일본대지진 등 재난재해 사고 대응에서 ICT 중요성을 강조하며 초스마트 사회 구축을 위한 공격적이고 전략적 예산을 배정했다.

무엇보다 IT전략이 개정될 때마다 부처별 정책 진도 수준, 수정사항, 대표 성공사례 등도 게재해 성과를 관리했다. 또 일본 총리가 임명한 정부 CIO가 중심이 돼 부처별 과제가 중복되지 않도록 계획 전반을 관리 총괄하도록 했다.

◇독일 “ICT 놓치면 제조업도 노화”

유럽은 전통적 제조업 강국이었다. 유럽은 아시아 신흥국에 앞서 산업 고도화를 이뤘지만 탈산업화 시기도 빨랐다. 유럽은 유로화 강세 상황에서 노동생산성은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제조업 마진은 계속 줄어들었다. 한국과 중국 등 신흥 공업국의 등장과 해외로 제조공장 이전이 이뤄지면서 산업 경쟁력은 빠르게 약화됐다.

이탈리아는 유럽에서도 중소기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로 변화하는 시장 트렌드에 대응하기 어려웠다. 프랑스는 주요 산업 인프라 국유화와 국가 주도 산업정책 이어지면서 노동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있는 시기를 놓쳤다는 지적을 받았다.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등 탈제조업 현상이 컸던 국가일수록 문제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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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독일은 자동차 제조 분야에서 지속 투자로 생산성과 부가가치 극대화를 이루는데 성공했다. 제조 공장은 노후화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투자와 혁신이 필요한데, 갈수록 기술 난도가 높아지면서 투자 규모도 커지고 집중돼야 했다. 이 때 냉전시대 이후 생산기지로 변모한 동구권 공장 등의 역할도 컸다. 저임금 일자리는 동구권 생산기지로 돌리고 독일은 일찌감치 고급기술 연구개발에 투자했다. 디지털 등 ICT에 대한 인프라 투자나 규제가 심한 것도 유럽 발목을 잡았다. 독일은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물리적, 제도적 요건은 갖췄으나 혁신 수준은 뒤처졌다는 진단을 받았다.

미국이 1960년대부터 인터넷과 통신에 적극 투자를 해왔던 것과 달리 유럽은 기초과학에 투자했다. 미국이 기업가정신 등을 강조하며 창업과 비즈니스모델 연구 등을 학계와 산업계가 활발하게 교류하며 키운 미국과 달리 유럽은 학계와 산업계 교류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최근에는 이에 대한 반성으로 유럽에서도 다양한 스타트업과 이른바 '모험자본'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디지털 시장을 독점하는 구글(알파벳),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과 같은 대기업이 세계 최대 단일시장인 유럽연합(EU)에서 나오지 못한 것이 규제와 벤처캐피털(VC) 부족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유럽은 금융위기에서 회복하면서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 미래 산업 경쟁력은 디지털 인프라 위에서 나온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했다. 각국은 AI, IoT, 자율주행차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제도와 분야별 전략도 재정비하고 있다. 영국은 핀테크 기업 요람으로 프랑스는 스타트업 지원에 대통령이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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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EU 차원 정책 마련에서 주도적 역할을 맡고 각국은 디지털 이니셔티브 공조를 통해 잠재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독일은 ICT로 첨단 제조업 경쟁력을 확보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널리 알려진 '인더스트리4.0' 전략이다. 독일은 인더스트리4.0으로 제조업 디지털화를 정책 차원에서 제시한 최초의 국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인더스트리 4.0 공식 발의는 2011년이었다. 그 시작은 산학 협력 네트워크와 표준화 작업에서 출발했다. 인더스트리 4.0은 민관 합동 프로젝트다. 독일 정부 주도 아래 산업부, 교육부, 보쉬, 프라운호퍼연구소, 지멘스, 도이치텔레콤 등 독일 내 대표 기업들이 참여했다.


독일 정부는 중장기 계획과 과제를 담당하면서 스마트팩토리 시대를 준비하는 정책 플랫폼을 구축했다. 기업은 제조업 디지털화 경험 축적과 네트워킹에 주력했다. 약 300개 기업, 159개 기관이 참여한 대형 프로젝트지만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으로 기술 확산·이전에 목표를 뒀다. 독일 산업 고도화 전략은 중국 정부가 적극 추진하는 산업 전략인 '중국제조2025'에도 영향을 미쳤다. 중국과 독일은 산업협력, 표준화 구축, 시범단지, 인재양성 등 시범 합작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