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분석-벼랑 끝 ICT코리아]<3>'차이나 포비아'에 제조업 무너진다

한국 핵심 첨단산업 가운데 하나인 디스플레이는 중국 정부의 기술 굴기에 직격탄을 맞았다. 액정표시장치(LCD) 산업은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로 성장했으나 지난해 중국이 세계 1위 생산능력으로 올라섰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는 아직 기술 격차를 유지하고 있지만 중국이 세계에서 전문가를 대거 영입하고 지방 정부가 막대한 보조금을 투입하고 있어 언젠가 선두 자리를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표. 국가별 TFT LCD 생산능력 (자료=IHS마킷,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중국은 LCD 생산능력(면적기준)에서 세계 1위로 올라섰고 기술도 한국과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로 우수하다고 평가받는다. 기술이 성숙한 아몰퍼스실리콘(a-Si)뿐 아니라 난도가 높은 저온다결정실리콘(LTPS)도 양국간 기술 차이가 거의 사라졌다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중국이 LCD 생산능력 1위로 올라서면서 전통적인 '크리스탈 사이클'도 변했다. 2년 주기로 패널 공급과 수요 흐름이 변해 패널 가격이 형성되는 게 크리스탈 사이클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LCD 공급과잉이 발생했는데 이번 패턴은 기존 흐름보다 가격 하락폭이 더 깊고 침체기도 길어졌다. 패널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면 제조사가 생산량을 줄이는 등 자구책을 쓰는데 생산 비중이 상당한 중국에서 별다른 움직임이 없으면 변화가 발생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최근 LCD 가격이 하락세를 멈추고 소폭 반등했다. 이는 중국 패널사 영향인 것으로 분석됐다. 중국 BOE와 차이나스타가 32인치 가격 인상을 요구하자 40인치, 50인치대 수요에 영향을 미치면서 패널 가격이 상승세로 전환했다. 한국과 대만이 패널 가격을 방어하기 위해 가동률을 낮추는 등 여러 전략을 펼쳤지만 큰 변화를 이끌어내진 못했다. 중국이 세계 LCD 시장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을 끼치는지 보여준 사례다.

중국 BOE와 차이나스타가 한국을 넘어 10.5세대에 투자한 것도 중국 디스플레이 굴기를 잘 보여준 사례다. 과거 일본 샤프가 10세대에 투자했다가 오랫동안 낮은 수율로 어려움을 겪었다. 반면에 BOE는 업계 예상과 달리 비교적 순조로운 초기 가동 성적을 내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 중국 패널은 저가형이나 소형 TV 시장 위주로 성장했다. 이제 국내 패널사는 60인치 이상 초대형 TV 패널 시장에서 가격은 물론 품질까지 갖춘 중국산 패널에 대항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했다.

중국은 LCD에 이어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꼽히는 OLED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빠르게 생산능력을 갖추고 기술력을 높여 이 분야 선두인 한국을 추월하는 게 목표다. OLED가 재료 구성과 배합 등 아날로그 요소가 많고 공정 기술 난도가 워낙 높은 만큼 LCD처럼 빠르게 추격하기는 힘들 것으로 국내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OLED 전문가들이 다수 중국에 영입됐고 지방 정부가 막대한 보조금으로 초기 투자·생산의 어려움을 상쇄시켜 주는 만큼 수 년내 OLED 기술력도 추격당할 수 있다는 우려를 완전히 씻어내기는 어렵다. 이 뿐만 아니라 마이크로 LED, 10.5세대 OLED, 폴더블 등 차세대 기술에도 적극 투자하며 '패스트 팔로워'가 아닌 '퍼스트 무버'형 성장을 추구해 위협이 된다.

디스플레이 뿐 아니라 중국이 세계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한 부품 분야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전기차 시장이 급속히 확대되면서 성장한 전기차용 배터리는 중국이 한국을 누르고 세계 상위권이 된지 오래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전기차용 배터리 세계 순위는 일본 파나소닉(16.7%), 중국 CATL(16.5%), 중국 BYD(10.8%), LG화학(8.0%), 삼성SDI(4.1%) 순으로 나타났다. 배터리 기술력은 한국이 아직 우위지만 자국 기업 육성과 국산화를 추진하는 중국 정부 정책 영향으로 현지 배터리 기업이 글로벌 수준으로 성장했다.

스마트폰용 부품 시장에서도 중국 기업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현지 스마트폰 제조사에 납품하며 내수 시장 위주로 성장했으나 이제 삼성전자 등 글로벌 해외 기업으로 대상을 확대했다. 디스플레이 지문인식 기업 구딕스, 카메라 모듈 제조기업 오필름 등이 대표적이다.

중국은 디스플레이, 부품을 넘어 반도체 산업 진출도 노리고 있다. 현지 국영 반도체 기업 칭화유니그룹은 최근 프랑스 칩 제조사 랑셍을 22억유로(약 2조9000억원)에 인수하는 시도를 했다. 앞서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 인수도 타진했으나 결렬됐다.

중국은 시스템반도체를 직접 설계·생산하는데 이 시장에서는 한국보다 기술력과 생태계가 우수하다고 평가받는다. 이제는 한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이 장악한 D램과 낸드플래시 시장에도 뛰어들어 국산화율을 높이고 궁극적으로 세계적 수준으로 기술을 발전시키겠다는 포부다.

배옥진 디스플레이 전문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