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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횡단보도 옆에 크게 그려진 사각형 줄 안에 쪼그려 앉은 채로 어색해 하던 시민을 기억한다. 교통 질서를 확립하겠다는 공권력에 이의를 달 생각은 없지만 평생 남을 그 시민의 기억은 누가 보상해 줄 수 있을까. 황당한 광경을 재미있어 하는 파란 눈의 외국인도 떠오른다.

초등학교 시절 손 도둑 한 명 잡겠다고 학생 모두를 책상 위에 무릎 꿇고 반성하라고 채근하던 담임교사 모습이 겹쳐진다. 혹시 내 가방에서 잃었다는 100원짜리 동전이 나오면 어쩌나 하며 전전긍긍하던 급우들, 도둑 후보들을 머리에 떠올리며 친구 사이 의심의 싹을 틔운 급우들 모두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았다.

교육부는 고등학교 교사와 자녀가 한 학교에 다닐 수 없도록 상피제도를 적용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 재직하는 교사와 두 딸의 시험문제 유출 의혹이 있어서라고 한다. 내년 3월이면 우리 아이들은 왜 전학을 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친구를 떠나야 한다. 우리나라 모든 교사는 영문도 모르고 예비 범죄자 취급을 당해야 한다. 교육에 헌신한 참 교사에게 커다란 모욕이다. 같은 이유로 시장 자녀는 타 도시로 전학 가고 대통령 가족은 한국을 떠나 살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소탐대실하는 정부 정책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한밤 도로를 막아선 경찰 음주 단속, 상피제도를 적용하다 심사위원 권위를 상실한 정부 평가, 사고 우려로 산업을 막아선 암호화폐 벤처 지정 자격 제외와 과도한 개인정보보호 정책, 학부 저학년생 현장 실습을 막아서는 교육 정책 등은 소탐대실하는 공권력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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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탐대실 정책이 생기는 이유는 단순하다. 갑자기 발생한 작은 사건이 언론에 드러나면 질책을 당하고 감사를 받아야 하는 공무원은 우선 '면피 목적'으로 정책을 만든다. 대비한 표식을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인권보다 '행정 편의'가 우선된 정부 타성도 또 다른 이유다. 그러나 행정 편의는 살인이 났다고 공원을 폐쇄하는 우매함을 낳기도 한다. 다수 존중이라는 미명 아래 인기에 편승하는 영혼 없는 정부에 소탐대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수준 낮은 정책으로 추락시키는 국가 브랜드와 상처받는 국민이 눈에 보일 리 없기 때문이다.

소탐대실 정책을 피하기 위해 신뢰가 가장 중요하지만 정부가 정책 득실을 계산하는 지혜와 방법을 알아야 한다. 또 정책 입안자는 자신이 편하기 위하거나 책임 회피를 위한 생각을 포기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공무원의 예기치 못한 부작용은 책임지지 않는 '면책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국민이 선량한 만큼 공무원도 선량하기 때문이다. 또 복지부동을 막기 위한 '실질평가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공무원 수만 늘리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미국에서 'Conflict of Interest'(이해 충돌)은 중요한 단어다. 이해 충돌로 공정한 판단 및 평가가 불가능하면 스스로 업무와 거래에서 배제를 요구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대학입시에서 이해관계에 있거나 공정할 수 없는 이유가 있으면 재판을 회피할 수 있다. 강제하지 않고도 공정할 수 있는 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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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법과 제도로 강제하는 후진국 모습에서 벗어나 큰 미래를 보는 국가로 변신할 때가 됐다. 진정한 혁신과 적폐 청산은 눈에 보이는 징계보다 사회가 변할 수 있는 환경과 문화를 만드는 데서 시작한다. 정책 이익과 손실을 저울질할 수 있는 지혜로 모두가 소탐대실하지 않는 대한민국을 기대한다.

정태명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 tmchung@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