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VR,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이상원 와이제이엠 게임즈 신사업 본부장

가상현실(VR)은 '감각 체험은 가능하지만 물리 형태 존재성은 띠지 않은 현실'로 정의된다. 기술 자체는 현실에 가깝게 느껴지도록 발전하고 있지만 VR 기술을 통해 경험하는 것은 절대로 실제가 될 수 없다. 이 기술을 표현할 진부한 역설 문장을 고르라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정도다.

VR 역사는 길다. 1968년 미국 하버드대 아이번 서덜랜드 교수가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HMD)를 최초로 고안했다. 이것이 현재 VR 개념을 구현한 첫 사례다. 이후 50년이 지났음에도 아직 보편 기술로 자리 잡지 못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실패로 단정하며 3D TV와 비교하곤 한다. 2010년 모두가 3D TV가 '차세대 큰 먹거리(The Next Big Thing)'라고 했다. 매일같이 미디어에서 3D TV가 언급됐고, TV 판매점 중앙에는 늘 3D TV가 전시돼 있었다. 그러나 이는 오래 가지 못했다. 2017년 초에는 급기야 모든 제조사가 생산을 중단하면서 완전한 '실패'로 끝났다.

3D TV 실패 원인으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필자는 부족한 몰입도와 그에 비해 높은 기술 가격을 이유로 꼽고 싶다. VR는 이 두 가지 측면에서 3D TV와 다르다. VR가 3D TV를 포함한 다른 미디어 콘텐츠와 확연하게 구분되는 것은 몰입에 있다.

미국 조지아공대 재닛 머리 미디어 교수는 기존의 픽션물과 VR 콘텐츠는 큰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VR는 타자 관점을 통해 사태를 체험함으로써 자신의 감정에서 벗어나게 된다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VR는 몰입 메커니즘에 의존하고, 이 때문에 자신에게서 벗어나 감정이입을 통해 새로운 정체성을 띨 수 있다고 말했다. VR는 애초에 몰입을 위한 방법으로 고안된 기술이기 때문에 '부족한 몰입도'를 우려할 필요가 없다.

VR 기술 발전 속도는 생각보다 빠르다. 최근 VR 하드웨어 성능은 비약 발전했다. 3D 그래픽 렌더링 기술도 빠르게 성장했다. 소비자에게 불편을 주는 화질과 멀미 현상을 혁신시켰을 뿐만 아니라 대중 가격으로 공급이 가능해졌다.

최근 출시된 VR 제품 '오큘러스 고(GO)'에는 '스탠드얼론'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다른 기기 연결 없이 독자 구동이 가능한 일체형이기 때문이다. 오큘러스 고는 장점에도 199달러라는 파격가로 살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VR에는 비싼 기술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없다. 몰입도와 가격 두 가지만으로 VR 미래를 낙관할 수는 없다. 그러나 기대할 만하다.

필자는 콘텐츠가 VR 성장을 견인할 것으로 예측한다. '라이브 공연'이 바로 그것이다.

콘서트장에서 셀럽과 대면하고 싶은 높은 욕구에도 시공간 또는 비용의 제한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팬들에게 VR는 가치 있는 솔루션이다. 특히 5G 시대에 가장 먼저 VR 성장을 견인할 킬러 콘텐츠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오큘러스, HTC 삼성, LG 등 각 제조사가 가격은 낮추고 성능은 더욱 개선된 VR 제품을 지속해서 출시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플랫폼도 유니티, 에픽게임즈(언리얼 엔진), 페이스북(오큘러스), 구글 등을 중심으로 생태계가 발전하고 있다.

다른 세상을 창조하러 가는 VR 열차가 이제 출발했다. 처음 타 보는 열차여서 조금은 멀미가 날지 모르지만 머지않은 시기에 우리 모두가 VR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생활할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확산 속도를 보고 미래를 부정으로 점칠 필요는 없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상원 원이멀스 신사업 본부장 samlee@oneimmer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