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우리 국방부가 발칵 뒤집혔다. 다국적 소프트웨어(SW) 기업 마이크로소프트(MS)가 2000억원의 추가 SW 사용료를 국방부에 요구했다. 국방부가 불법 SW를 대량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근거로 제시했다. MS는 즉각 미국무역대표부(USTR)에 이 같은 내용을 보고했다. USTR는 보고서를 통해 불법 SW 사용 명단에 아프리카 국가와 함께 우리나라를 포함시켰다. 우리나라는 국방부가 불법 SW를 조장하는 미개발 국가가 됐다. 언론은 국방부가 불법 SW를 사용한다는 비난을 쏟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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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내용은 이렇다. MS는 윈도 서버 등 제품군 접속 권한인 '클라이언트액세스라이선스(CAL)'를 적게 구매했다고 주장했다. 국방부 전체 PC 21만대가 윈도 서버에 접속하기 때문에 이에 맞는 CAL을 구입해야 하는데 계약 규모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전체 PC가 윈도 서버에 접속하는 것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실제 윈도 서버 외 리눅스 등도 사용했다.

국방부와 MS 간 라이선스 갈등은 1년 이상 끌었다. 이듬해 5월 '미래 지향성 합의'라는 이름으로 분쟁은 종결됐다. 국방부는 추가 사용료 지불 없이 최선의 결과를 얻었다. 물론 상처는 컸다.

교훈도 있었다. CAL 계약을 다수 기관과 기업에 알렸다. 다국적 SW를 도입하는 기관과 기업은 라이선스 정책을 모른다. 통합 사업을 수행하는 시스템통합(SI) 업체도 SW 라이선스 정책을 설명해 주지 않는다. CAL 계약은 사용자 한 명 한 명을 대상으로 한 라이선스 계약이다. 사용 PC가 1만대면 CAL 계약은 1만대를 해야 한다.

갈등 후 정부 부처는 올바른 SW 사용 홍보에 나선다고 밝혔다. 다국적 SW 라이선스 정책을 안내하고 가이드라인을 만들기로 했다. 지식재산권 주무 부처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미래창조과학부), 행정안전부(안전행정부) 등이 대응 방안 마련에 참여했다. 더 이상 국방부와 MS 갈등은 조성하지 않겠다는 목표였다.

국방부와 MS 분쟁이 종료된 지 5년이 지났다. 달라진 것은 없다. 이후 한국전력공사 등이 MS 불법 라이선스 소송에 시달렸다. 법무법인을 통해 10인 이하 소기업까지 라이선스 이슈 대상이 됐다.

라이선스 이슈 제기는 다른 다국적 SW 기업으로 확대됐다. 한 공공기관은 오라클로부터 900명 추가 SW 사용료를 요구 받았다. 기관은 데이터베이스(DB) 접근 가능 인원은 1000명인데 DB관리시스템(DBMS) 유저 라이선스는 100개만 구매했다. 담당자는 전임자가 구매 당시 오라클이 문제 삼지 않기로 약속했다며 책임이 없음을 주장했다.

갈등은 계속 확산되고 있다. 왜 이럴까.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국내 기관·기업은 여전히 다국적 SW 기업의 라이선스 사냥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복잡한 다국적 SW 라이선스 정책을 판매업체에만 의존하기 때문이다. 판매업체는 당장 매출이 급하니 판매에 급급하다. SW 라이선스 정책 위반에 따른 추가 사용료 부과는 신경 쓰지 않는다.


문화체육관광부 등 정부 부처는 국방부와 MS 간 갈등 이후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가이드라인은 깜깜무소식이다. 다국적 SW 기업은 자신의 입맛대로 다양한 라이선스 정책을 만들어 낸다. 이를 안내하고 가이드하는 곳은 없다. 국산 SW가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외산 SW를 도입한 기관과 기업은 라이선스 문제로 골머리만 앓는다. 명확한 가이드라인 마련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신혜권 기자 hk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