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반도체산업특별위원회'라도 만들자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에 반도체 부문에서 영업이익 11조5500억원을 벌어들였다. 매일 1200억원 넘는 수익을 올렸다. SK하이닉스 올해 영업이익 예상액도 20조원이다. 하루 단위로 환산하면 매일 이익이 600억원 생긴다. “반도체가 아니라 돈을 찍는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조폐공사에서 하루에 생산하는 신권이 이만큼 될지 궁금하다.

이렇게 번 돈은 어디로 갈까. 절반 이상은 시설 투자에 쓰인다. 나머지도 대부분 연구개발(R&D)에 재투자한다. 실제 지난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시설투자액은 각각 26조4843억원, 9조562억원에 달했다. 올해는 이보다 훨씬 많다.

투자액은 한국 경제 심장이자 대동맥 역할을 한다. 건설, 장비, 재료, 부품 등 반도체 생태계에 놓인 무수한 기업이 여기서 뿜어져 나온 자금으로 성장한다. 지난해 반도체 장비업계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것은 단편 사례다. 자동차, 철강, 조선 등 주력 산업이 부진했지만 한국 경제가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게 된 것도 반도체 질주 덕분이다.

이 때문에 '반도체 착시 현상'이라는 말이 나왔다. 증시에 반도체 연관 기업 시가총액은 550조원에 이른다. 상장 기업 전체 시총 가운데 28%를 차지한다. 반도체를 빼면 한국 경제 규모 3분의 1이 날아간다.

잘나가던 반도체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중국 정부가 딴죽을 걸고 나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가격 담합 혐의로 조사하고 있다. 가격 담합 조사는 시진핑 중국 주석이 지난 4월 '반도체 심장론'을 설파한 뒤 한 달 만에 전격 이뤄졌다. 중국은 10년 동안 반도체 산업에 170조원을 투입하겠다는 계획도 실행하고 있다. 원유보다 반도체 수입액이 많은 중국으로선 반도체 국산화가 당면 과제다. 밖으로 담합 조사와 같은 규제로 틀어막고 안으로 자국 기업을 육성한다. 한국 반도체 산업을 집요하게 견제한다.

문제는 뾰족한 대책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중국 관계 당국에 “담합 조사를 공정하게 해 줄 것”을 당부했을 뿐 크게 항의하지 못했다. 사실 중국이 쏟아 붓는 정부지원금도 세계 공정무역 질서에 위배된다. 한국 정부는 자칫 무역 전쟁으로 비화될까 드러내 놓고 문제 제기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사드 보복'에서 뜨거운 맛을 봤다. 지난 주 열린 산업부와 반도체 업계 대표 간 대책회의에서도 답답한 상황만 확인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것인가. 어영부영하다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 헤게모니는 중국으로 넘어갔다. 반도체는 한국 경제 마지막 보루다. 반도체 산업이 무너지면 4차 산업혁명이나 혁신 성장도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당장 묘안이 떠오르지 않더라도 대책을 계속 논의하고, 작은 것이라도 실행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4차산업혁명위원회처럼 민·관이 힘과 지혜를 모을 수 있는 '반도체산업특별위원회'라도 만들어야 한다. 1980년대 초반 미국에서도 일본에 뺏긴 반도체 주도권을 찾아오기 위해 '세마테크'라는 반도체기업연합체를 만들었다. 민간 주도 조직에 범정부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미국 반도체 산업은 부활했다.

한국이 가장 잘하는 주력산업이 위기다. 축구 선수에게 골프가 뜨니까 골프 선수로 전향하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지금 우리에겐 4차위보다 반도체산업특별위원회 같은 조직이 더 시급할지 모른다.

장지영 미래산업부 데스크 jya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