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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연예인 성추행 관련 기사에 댓글을 달았다. “잘하지 못했지만 모든 방송에서 하차하는 것은 좀 안타깝다.” 어떤 반응이 나왔을까. 두 시간 후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린 '안 좋아요' 버튼 클릭 수가 500개를 넘었다. 비방성 반박 댓글도 주르륵 달렸다. “정신 나간 거 아니야” “당신 딸이 당했다고 생각해 봐” 등과 같이 거칠게 공격하는 이도 많았다.

온라인에서 의견이 양 극단으로 갈리는 '극단화 현상'이 심해졌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 이후 새 정부가 적폐 청산에 나서면서부터다. '선과 악'을 가르는 군중 심리가 팽배하다. 잘못 걸리면 죽는다. '갑질' '금수저' '왕따' '거짓말' '미투' 등이 공분을 불러오는 키워드다. 이런 프레임에 걸리면 잘못의 정도나 차이는 따지지 않는다. 무조건 아웃(OUT)이다.

선과 악 프레임은 이미 답이 정해져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이런 답은 목소리 큰 사람에 의해 강화된다. 견해가 조금 다른 이는 공격 당할까 두려워 침묵한다. 열린 공간이자 직접 민주주주의 대안으로 꼽힌 온라인에서 '숙의 민주주의'는 되레 위기를 맞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 반도체사업장 작업환경보고서 공개를 놓고 공방이 뜨겁다. 고용노동부가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워 공개 지침을 내놓았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핵심 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며 맞섰다. '알 권리'와 '기술 유출'은 우위를 따질 수 없는 가치다. 어느 한쪽에 손을 들어주면 폐해가 심각해진다. 폭넓고 심도 있는 논의 끝에 '사회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급했다. 가장 신중해야 할 정부가 빠르고 강하게 밀어붙인다. 고용노동부는 정보 공개 논란 종지부를 찍겠다는 의지까지 보였다. 최근 입법 예고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그것이다. 여기에는 첨단 핵심 기술을 일반인이 온라인으로 열람할 수 있는 조항까지 담겼다. 이게 무슨 말인가. 중국 기업이 마음만 먹으면 일반인을 매수해서 핵심 기술을 실시간으로 빼내 갈 수 있다. 외국 기업은 이 법안이 제정되면 한국에서 제품을 팔 수 없다고 말한다.

재계는 부글부글 속을 끓이고 있지만 대놓고 반발하지 못한다. 전 정부 시절 정경 유착 스캔들로 '반 대기업' 정서가 만연하기 때문이다. 삼성은 최근 '노조 와해 문건' 파문으로 궁지에 몰렸다. 삼성증권 주식 배당 착오 사태까지 터져 설상가상이다. 부도덕한 기업으로 뭇매를 맞고 있다. 고용부가 이런 약한 고리를 파고든다는 생각마저 든다. '알 권리'라는 단어에는 상대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숨긴 것은 악한 것, 드러내야 할 것이라는 논리가 숨어 있다. 그것은 현재 사회를 지탱하는 기술 개발과 혁신, 기업 영업 노하우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일이다.

대기업이 잘못했다면 비판 받고 고쳐야 한다. 그러나 선과 악으로 몰고 가면 곤란하다. 기술 유출은 대한민국 핵심 산업 운명이 걸린 문제다. 과거 메모리 반도체 종주국 미국이 일본에 패권을 내준 것도 무분별한 '기술 라이선싱' 때문이었다.


산업통상자원부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공무원은 기술 유출 문제 심각성을 잘 알 것이다. 그런데 요즘처럼 대기업이 지탄 받는 분위기에서 드러내 놓고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기술 유출 이슈만은 반 대기업 정서보다 '국익 프레임'으로 냉정하게 접근해야 한다. 대기업이 잘하지 못한 것과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구분해야 한다. 대한민국 마지막 보루인 공직 사회마저 '숙의 민주주의'를 질식시켜서는 안 된다.


장지영 미래산업부 데스크 jya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