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상생, 거래금지 블랙리스트부터 없애자

“기대 이상이다.” “지켜봐야 한다.”

반응은 갈렸다. 유독 회의론자 이야기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들 주장은 비슷했다. “지난 정부에서도 상생안은 여러 번 발표됐다. 그러나 제대로 실행이 안 됐다.” 지난주 반도체·디스플레이 상생발전위원회가 출범하자 중소업계에선 다양한 목소리가 나왔다.

상생안의 핵심은 대기업 생산 라인을 중소기업 기술 테스트베드로 개방하는 것이다. 그것도 매년 100건을 5년 동안 추진하겠다고 못 박았다. 대기업이 현물로 2조원을 투자한다.

중소업계에선 가장 진화된 상생 방안이라고 반겼다. 중소 장비·재료업계가 직면한 현실을 잘 반영했기 때문이다. 장비·재료업계의 최대 난관은 양산 검증이다. 좋은 기술을 개발하고도 양산 라인에서 테스트할 기회를 얻지 못해 사장되는 기술이 하나둘이 아니다.

중소업계가 가장 경계하는 실천 문제에서도 진일보했다. 매년 100건이라고 실행 목표치를 제시했다. 그것도 반도체 70건, 디스플레이 30건으로 구체화했다. 상생위에서 이 수치를 매년 점검할 것이다. 적어도 수치상 실천은 담보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상생안의 맹점을 세세하게 검토하고 중소업계의 불만을 잘 수렴한 결과다. 업계에서는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반도체 전문가 출신이어서 정책이 훨씬 정교해졌다는 호평도 나왔다.

대기업도 장기로는 나쁘지 않다. 당장은 양산 라인을 테스트 공간으로 제공하면서 비용이 발생한다. 그러나 값비싼 외산 제품을 대거 국산화할 수 있다. 대항마가 생기면 외산 구매 단가를 깎을 수 있다. 테스트 공간 제공 비용보다 더 많은 시설투자 비용을 아낄 수 있다.

몇 가지 우려되는 점도 있다. 우선 많은 중소기업이 테스트 사업에 몰릴 것으로 보인다. 선정되면 5억~10억원어치의 테스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선정 주체가 누구냐고 기자에게 물어오는 사람이 많다. 상생위가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지 않으면 잡음에 휘말릴 수도 있다.

상생위라는 좋은 플랫폼이 단순한 '테스트위원회'로 전락해서도 안 된다. 양산 기술 검증 지원 사업 외에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윈윈 방안이 많다. 예를 들어 삼성, LG, SK 등으로 나뉜 협력사의 편 가르기만 혁파해도 경제 효과는 엄청나다. 우리나라 장비·재료 기업은 세계 최강의 반도체·디스플레이 대기업을 지근거리에 두고도 오히려 해외 기업보다 역차별 받고 있다. 해외 업체는 삼성, LG, SK 가리지 않고 제품을 공급하는 반면에 한국 기업은 한쪽 진영에 묶여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거래 금지'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진 업체도 있다.

우리 대기업 간 경쟁이 과열되면서 일그러진 관행을 만들었다. 이는 대기업에도 실리를 주지 못한다. 상대 진영의 좋은 제품을 알고도 포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상생위는 이런 '자승자박'의 폐해도 과감하게 혁파해야 한다. 대기업이 테스트 라인 개방에서 나아가 협력사도 공유한다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생태계가 만들어질 것이다.

열쇠는 대기업이 쥐고 있다. 삼성, LG, SK가 먼저 껍질을 깨고 나와야 윈윈을 할 수 있다. 당장 대기업이 저마다 '거래 금지 기업 명단'을 폐기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어떨까. 상생은 낡은 관행을 혁파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장지영 성장산업부 데스크 jya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