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가상화폐가 '지동설'이라면?

우리 사회에는 무조건 옳다고 믿는 신화가 있다. 과학 발달로 완벽한 허점이 드러나지 않는 이상 그 믿음은 진리로 군림한다. 고대 프톨레마이오스 천동설은 무려 1500년 동안 지속됐다.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 달, 별 등이 각기 다른 궤도로 돈다는 생각의 틀은 그만큼 힘이 강력했다. 천동설은 일식과 월식을 정확하게 예측했다. 그러다보니 약간의 모순이 있어도 쉽게 파기되지 않았다. 과학 성과가 누적되면서 모순은 순식간에 곪아 터졌다.

패러다임의 변화는 계승과 발전이 아니다. 과거와 아예 단절하거나 폐기하는 식으로 나타난다. 한마디로 혁명이다. “혁명 와중에서 보내는 20일은 평상시 20년과 맞먹는다.” 러시아 혁명을 이끈 블라디미르 레닌이 남긴 말이다. 레닌의 말처럼 러시아에서 불과 몇 달 만에 천지개벽이 일어났다. 역사의 시간은 균질하지 않다. 오랜 시간 평온하다가도 때론 급류를 타며 한꺼번에 모든 것을 바꿔 놓는다.

산업 혁명도 비슷한 궤적을 밟아 왔다.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브라운관 TV가 액정표시장치(LCD) TV, 피처폰이 스마트폰으로 각각 바뀌는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노키아처럼 영원할 것 같던 챔피언도 2년 만에 몰락했다.

가상화폐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럽다. 투기 수요가 몰리면서 정부가 외국인과 청소년의 거래를 금지했다. 찬반양론이 맞붙었다. 부정론자는 통화 시장을 교란하면서 투기 광풍을 몰고 온 가상화폐 거래를 전면 금지할 것을 요구한다. 반대편에서는 가상화폐에 담긴 블록체인 기술이 4차 산업혁명을 불러올 수 있다고 맞선다. 고등학생마저 투기 광풍에 휩쓸리는 상황이다 보니 정부는 부정론에 기울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가상화폐는 화폐가 아니다”라고 못 박기도 했다.

그런데 기술 전문가의 주장처럼 가상화폐에 담긴 블록체인 기술이 새로운 산업혁명의 씨앗이라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실제로 블록체인 기술은 보안이나 편의성에서 그 어떤 금융 거래 방식보다 뛰어나다. 거래 기록을 특정 서버가 아닌 일반인 PC에 분산·저장, 해킹이 불가능하다. 글로벌 단일화폐여서 며칠 걸리던 국제 송금도 실시간으로 처리한다. 주식, 채권, 유통 등 응용 분야도 무궁무진하다. 모든 화폐가 가상화폐로 전환된다면 오프라인 통화를 만들고 유통하는데 필요한 엄청난 비용도 사라진다.

일부 외신은 가상화폐 열풍으로 한국이 '디지털 월스트리트'로 떠오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금융 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뀌면 한국이 세계 금융 시장의 주류로 떠오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영국의 적기법이 떠오른다. 영국은 자동차를 처음 개발했다. 그러나 자동차는 교통사고가 잦아 위험하다는 마차업계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적기법에 따라 자동차엔 빨간 깃발을 달고, 제한된 속도로만 달리도록 의무화했다. 결국 자동차 종주국 영국은 '아우토반'을 깐 이웃 독일에 자동차 산업의 패권을 넘겨줬다.

자동차가 초래한 교통사고 위험은 교통질서를 강제하는 법과 제도로 줄여 왔다. 가상화폐 초기 시장에 나타나는 투기 광풍도 보완하는 쪽에 무게를 둬야 한다. 교통사고 우려 때문에 자동차 운행을 아예 금지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와 비슷하다. 우리가 진리로 믿고 있는 지금의 통화체계가 만약 천동설이라면 후손은 우리 세대를 어떻게 평가할까. 혁명은 눈 깜짝할 새 끝난다. 그것도 과거와 완전히 결별하는 식이다. 낙오자가 되면 안 된다.

장지영 미래산업부 데스크 jyaj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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