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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을 맞아 재계 시계가 빨라졌다.

기업들은 올해 막바지 실적을 챙기면서 내년도 경영 계획을 잡고 있다. 삼성, LG, SK 등 주요 그룹들은 내년을 겨냥한 인사와 조직 개편까지 마쳤다.

2018년 새해 기대가 많을 시기다. 그러나 재계가 느끼는 분위기 전반은 좋지 않다. 해마다 '위기'를 강조하지 않은 때가 없었지만 올 연말의 불안감은 예년보다 더 깊어 보인다.

드러난 지표만 보면 기업들의 '앓는 소리'가 이해되지 않는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전자 등 전자 정보기술(IT) 분야 대표 기업들은 사상 최대의 실적 행진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수출 부문도 최근 몇 년 동안의 정체 국면에서 벗어나 최대 성장 폭을 기대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재계가 느끼는 부담과 불안은 예사롭지 않다. 우선 법인세 인상이 결정됐다. 오랜 기간 논란이 있었다. 순기능도 있겠지만 미국과 일본 등 법인세 인하 세계 흐름 속에서 우리 기업의 발목에 '모래주머니' 하나를 더 채운 것과 같다.

최저 임금 인상과 근로 시간 단축도 기업에는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업계는 단계 적용이나 업종 특성을 반영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번 정권에서 큰 기조가 바뀔 가능성은 옅다는 게 일반 관측이다.

빠리바게뜨에서 불거진 정규직 전환 고용 문제는 언제든 다른 기업으로 옮아 갈 수 있는 이슈다. 프랜차이즈 업계나 서비스 자회사를 둔 기업체 대부분이 영향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외부 위협도 여전하다. 미국은 세이프가드를 앞세워서 다각도로 통상 압박을 이어 갈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체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의 방향에도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완화된 분위기지만 중국의 대 한국 대응 기조도 불안하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파장을 걷어내는 데에는 아직도 적잖은 시간이 필요하다. 중국 특유의 예측 불가능한 기조는 내년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우리 경제, 우리 기업에는 불확실한 요인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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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최근 정부의 정책은 대기업 기 살리기보다 위축시키기 쪽에 가깝다. 주요 대기업 기획팀은 새해 경제 정책을 수립하면서 국내외 경제 상황, 산업 전망 이외에 정부의 정책 동향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재계의 복수 관계자들은 '대내외 경제 상황이 불안정한 가운데 정부가 기업에 부담을 주는 정책을 계속 늘린다'고 불만이다. 정부를 조력자가 아닌 위험 요소로 보는 인식이 확산되는 점은 큰 문제다.

문재인 대통령이 중소기업 육성을 내세운 것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편 가르는 듯한 정부의 발언은 위험해 보인다.

'경제 정책의 중심을 재벌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옮겨 가겠다'는 선언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두 축이 균형을 잡고 잘 굴러가게 하겠다'는 표현이 더 낫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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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


흔히 '경제는 심리'라고 한다. 그만큼 분위기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바짝 움츠린 주체에게 혁신이나 고성장을 기대하긴 어렵다. 잘잘못은 따지더라도 대기업 본연의 경영 활동은 최대한 보장하는 쪽으로 정책이 설정돼야 한다. 대기업도 중소기업만큼이나 소중한 국가 경제의 한 축이라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김승규 전자자동차산업부 데스크 se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