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뉴스 앵커로 분해서 열연을 펼친 배우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소식이 전해진 날 퇴근 후 집에 들어섰을 때 초등학교 3학년 딸이 가장 먼저 건넨 말도 “아빠, 김주혁 아저씨 사고로 죽었다”는 것이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앵커라는 장래 희망 때문에도 매우 친근하게 다가왔을 배우의 죽음은 딸에게 적잖은 충격인 듯 했다. 충격에는 열 살 딸이 처음 접한 '내가 아는 가까운 누군가의 죽음'이라는 점이 더해졌을 것이다.

방송 뉴스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직업이 기자인 이들에게는 일종의 연대감도 느끼게 한 터여서 갑작스런 그의 죽음이 더 아쉽고 안타깝다.

그의 삶과 죽음의 경계는 '찰나(刹那)'로 갈렸지만 대다수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그에 대한 추억은 '겁파(劫〃)'에 더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찰나는 불교에서 말하는 시간의 최소 단위다.

산스크리트어 '크샤나'의 음역으로, 지극히 짧은 시간을 말한다. 120찰나가 1달찰나(순간, 약 1.6초), 60달찰나가 1납박(경각, 약 96초), 30납박이 1모호율다(약 48분), 5모호율가 1시(4시간), 6시가 1주야(24시간)로 이어진다. 이 계산법에 따르면 1찰나는 75분의 1초(약 0.013초)에 해당한다.

반대되는 개념인 겁파는 흔히 겁(劫)이라고 한다. 일정한 숫자로 나타낼 수 없는 무한한 시간을 말한다. 산스크리트어 '칼파'의 음역이다. 본래 인도에서는 범천의 하루, 곧 인간계의 4억 3200만년을 1겁이라 한다.

지난해 10월 24일 한 방송사의 태블릿PC 보도로 촉발된 촛불 시위와 현직 대통령 탄핵, 이어진 대통령 선거 등 1년의 시간이 흘렀다. 돌아보면 어떻게 지났는지 이 또한 '찰나'처럼 느껴지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언제 끝날지 모를 '겁'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1일 이광구 우리은행장이 사임 의사를 밝혔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신입사원 공채에서 국가정보원이나 금융감독원, 은행의 주요 고객 자녀와 친인척 등 16명을 특혜 채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현재로서는 이 은행장의 법제도 책임 여부는 불분명하다. 이 은행장은 임직원에게 보낸 메일을 통해 경영 최고책임자로서의 도의의 책임을 강조했다. 채용 비리와 관련해 금감원이 검찰에 고발하면서 검찰 수사가 진행될 예정인 만큼 우리은행에 부담을 지우지 않기 위해 사임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해 11월 과점 주주 체제의 민영화 성공에 힘입어 지난 1월 연임이 확정됐고, 3월부터 2기 체제를 시작했다. 지주사 전환 뒤에는 지주 회장에 취임하는 게 정해진 단계로 읽혔다. 그러나 채용 비리 의혹이 불거지면서 연임 임기 7개월 만에 물러나게 된 셈이다. 갑작스런 결정까지 느꼈을 그의 시간은 찰나보다 겁에 가까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118년 역사의 우리은행은 국가 경제 발전과 사회 공헌의 책임을 다하는 은행으로 거듭나야 한다. 물러나는 이 은행장의 바람이기도 하다.


민영화로 재도약을 맞은 우리은행, 그리고 묵묵히 자신을 자리를 지켜 온 구성원에게는 이번 사건이 찰나의 시간으로 지나가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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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범 금융/정책부 데스크 kbho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