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5주년 특별기획]4차산업혁명, 교육 혁신부터<하> 영국 '컴퓨터 사이언스' 교육 현장을 가다

자유롭게 손을 들어 의견을 내놓던 대학원생이 어린 학생의 소셜미디어 사용을 어떻게 제한할 것인가라는 교수의 질문에 주저한다. 소셜미디어 의존도가 높아진 학생에게 무조건 '안 된다'라는 명령이 와 닿을까. 유튜브는 어디까지 필터링해야 할까. 블로그는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쉽게 생각했던 분야에 쉽지 않은 질문이 쏟아져 나온다.

로햄튼 대학 PGCE 석사과정 '컴퓨터 사이언스'수업. 학생들은 디지털세상에서 어린이들의 활동과 권리에 대해 수업을 들으며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했다.

영국 런던 서남부에 위치한 로햄프턴대의 교원양성(PGCE) 석사과정 '컴퓨터 사이언스'의 첫 수업시간 모습이다. 2014년부터 소프트웨어(SW) 코딩이 필수과정으로 채택된 데 발맞춰 개설된 과목이다.

코딩을 가르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학생 20여명이 컴퓨터 책상을 벗어나 둥그렇게 모여 앉아 교수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디지털 세계를 먼저 생각하고 자기주관을 갖도록 한 후 대학(원)생들은 컴퓨터 활용과 코딩을 배운다.

컴퓨팅 사이언스에서 SW 코딩은 중요한 부분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컴퓨터를 활용하는 능력, 정보를 이용하는 능력, 프로그램을 만드는 능력이 모두 컴퓨터 사이언스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 기본에는 디지털 세상에서의 균형에 관한 교육철학도 자리한다. 세계 처음으로 초·중등 교육에 SW 코딩을 필수과정으로 채택한 영국은 '코딩'을 기계적으로 가르치지 않았다. 디지털 세상에서 필요한 '컴퓨터 사이언스'를 종합적으로 다뤘다.

마일즈 베리 로햄프턴대 교수는 “특정 알고리즘을 가르치는 것은 우리 교육 목표가 아니다. 몇 년 후면 그런 알고리즘을 자동 생성하는 프로그램이 나오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생각과 아이디어를 어떻게 프로그래밍을 통해 구체화하는지를 가르치기 때문에 코딩 수업이라기보다는 '컴퓨터 사이언스' 수업이라고 부른다”고 강조했다.

마일즈 베리 로햄튼대 교수가 교정에서 영국의 컴퓨터 사이언스 수업과 미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영국 남쪽 호브 지역의 세컨더리스쿨(중·고등 통합) 10학년 제인은 학교 제도가 바뀌면서 코딩을 배웠다. 코딩 수업 시간이 되면 반 학생 30명이 컴퓨터가 있는 IT룸으로 이동한다. 학생이 별도로 준비하는 교재나 준비물은 없다.

제도가 바뀌기 전인 초등학생 때에는 파워포인트로 그림그리기 같은 활용법을 배웠다. 세컨더리스쿨에 입학하면서 코딩을 배우기 시작했다. 주로 파이썬(Phython)을 이용한 코딩, 비트맵·벡터와 같은 그래픽, 애니메이션, 컴퓨터 모델 등을 수업 시간에 배운다.

영국에는 교과서가 없다. 정확히 말해 교과서로 활용할 수 있는 책은 있으나, 수업시간에 사용하는 것은 교사 재량이다. 그래서 교과서 없이 가르치는 교사가 많다. 초등학교와 세컨더리스쿨에서 반드시 코딩을 가르쳐야 한다는 규정이 있을 뿐 우리나라처럼 정해진 시간도 없다. 어떤 과목에 얼마만큼의 시간을 배정할지는 교장의 재량이다. 학교나 교사에 따라서는 컴퓨터 없이 놀이카드로 가르칠 수도 있다.

학생이 어떤 능력을 갖도록 가르쳐야 할지에 대한 지침은 있다. 초등학교 1~2학년 첫 번째 단계에서는 알고리즘이 무엇인지,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 디지털 디바이스 프로그램(앱)에서 알고리즘이 어떻게 구현되는지 등을 학생이 배워야 한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학생이 특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디자인·디버깅하는 내용, 두 개 이상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해 문제를 푸는 내용이 과정에 포함된다. 학년에 따라 지침은 상세하다. 교사는 그에 맞춰 교육 프로그램을 짠다.

교사가 참고할 수 있는 교과서도 있다. 2014년 출판된 컴퓨터-IT라는 책은 학교에서 다뤄야 할 6개 영역(알고리즘, 프로그래밍, 개발, 데이터 표현, 하드웨어와 프로세싱, 정보통신)을 규정하고 상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우리나라처럼 체육시간에 수능과목 자율학습을 시키는 것처럼 형식적으로 반영하는 형태가 아니다. 전국 학생이 치르는 GCSE와 A레벨 시험 때문이다. 대학 입학 때 반영되는 학업성취도 평가다. 학교 순위 평가에도 활용된다.

컴퓨팅 사이언스도 선택 과목이다. 학생은 컴퓨터 사이언스의 핵심 콘셉트를 이해하고 지식을 풀어 쓸 수 있어야 한다. 문제를 분석·평가하고 솔루션을 내놔야 한다. 학교장은 다른 과목과 균형을 맞춰 컴퓨터 사이언스 과목 교육도 충분히 해야 한다.

미래에는 인공지능·빅데이터를 비롯해 컴퓨터 사이언스 관련 직종이 각광을 받을 것이라는 부모세대의 기대감 때문이라도 컴퓨터 수업은 무시할 수 없다. 영국컴퓨팅소사이어티(BCS)의 닐 맥린 수석 교사 담당(Senior teacher manager)은 “한정된 예산에서도 컴퓨터 수업을 장려한다”고 말했다.

닐 맥린 BCS 매니저.

◇영국 정부, 교사 양성에 심혈

'산업혁명의 나라' 영국은 4차 산업혁명 시대 리더를 꿈꾸며, 누구보다 발빠르게 변하고 있다. 올 해 초에는 영국 정부가 전 사회에 걸쳐 변화를 촉진하는 정책을 담은 '디지털 전략 2017'을 발표했다. 디지털 전략 2017에서 교육은 디지털 세상의 리더로 나아가기 위한 중요한 항목이다.

영국 정부는 가장 먼저 교사 양성에 초점을 맞췄다. 교사 75% 이상이 IT수업을 가르쳤다고는 해도 컴퓨터 사이언스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배경이 있는 교사는 거의 없다.

이 때문에 영국 정부는 다른 교사에게 교육법을 알려줄 '마스터 티처' 제도를 도입했다. 컴퓨터 전문성을 갖춘 교사 양성을 위한 장학금도 마련했다. 컴퓨터 전공 학생이 교사가 되는 코스를 밟으면 2만5000파운드(약 3800만원)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

컴퓨터 교사의 커뮤니티인 CAS(Computing At School)가 지정하는 마스터 티처는 특정분야에서 전문 지식과 경험을 다른 교사와 공유한다. 지역에서 워크숍·세미나를 통해 만나거나 때로는 1대1·전화·이메일을 통해 다른 교사 전문성을 키워주는 역할을 한다. 마스터 티처는 올해 초 350명에서 최근 500명 이상으로 늘었다. 학교는 지역 대학이나 마스터 티처와 제휴를 맺어 교사의 지식 수준을 높이고 있다.

CAS 이사이기도 한 마일즈 베리 로햄프턴대 교수는 “마스터 티처는 교사를 잘 가르칠 수 있는 경험을 갖고 있는 또 다른 교사”라면서 “영국 전국에 교사가 모여 함께 지식을 공유하는 '허브'가 250개 가까이 된다”고 말했다.

2014년부터 시작된 컴퓨터 사이언스 수업이 빠른 시간 안에 자리잡은 것은 영국 내 에코시스템 덕이다. 정부가 교사 양성을 지원하고 있으나 여전히 교사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학생의 관심도에 따라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영국에서는 더 배우길 원하는 학생을 위한 비영리재단이나 커뮤니티가 설립되고 있다. '코드클럽'이 대표적이다. 2012년 설립된 코드클럽은 학생에게 컴퓨터 지식을 나누고 싶어하는 자원봉사자와 코딩에 관심 많은 학생을 연결해 방과후 수업을 하는 단체다. 컴퓨터 교사와 컴퓨터 전공자들이 발 벗고 나선 덕에 영국 전역 5959개 코드클럽이 형성됐다. 학생은 주변 코드클럽을 찾아 무료로 수업을 듣는다.

영국 공영방송인 BBC는 코딩을 할 수 있는 주머니 크기 소형 컴퓨터 '마이크로비트'를 만들어 7세 학생에게 보급했다.

교사 간 협력도 활발하다. CAS 홈페이지에는 교사가 자체 제작한 교육용 자료가 3000개 넘게 올라와 있다.

런던(영국)=문보경 산업정책부 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