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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퇴근길. 동네 보도블록 교체 공사가 한창이었다. 지나가는 주민들은 하나같이 멀쩡한 보도블록을 왜 부수는지 의아해 했다. 며칠 후 회사 출근길. 영등포구의 한 지하철역 근처에서도 보도블록 공사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통상 크리스마스를 전후에 목격되던 공사가 이제는 연중 상시 체계로 바뀐 듯하다.

정부는 내년도 예산을 초슈퍼 규모로 편성했다. 국가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도 외면했다. 올해보다 9.3% 늘어난 513조5000억원이다. 2019년도 본예산 469조6000억원보다 43조9000억원이 늘었다. 강력한 재정 정책으로 경기를 살리겠다는 전략이다. 최종으로 국회 심의를 통과해야 하지만 원안에서 큰 수정을 기대하긴 어렵다. 그렇다면 증액된 수십조원에 이르는 돈은 어디서 나오는가. 결국 경제 주체인 가계와 기업이 부담할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경기가 어려운데 정부가 세금을 더 걷는다면 소득주도 성장이 구현될지 의문이다.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세금 위주 재정정책이 지난 3년 동안 우리 경제 활성화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됐는가 반문하고 싶다.

시대가 변했다. 이제는 국민 혈세를 사용하는 정부의 세출 구조에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3차 산업혁명 시대의 세입·세출 구조에 메스를 가해야 한다. 관공서나 공기업들은 관성적으로 배정받은 예산을 쓴다. 일단 챙기고 보자는 행태가 반복된다. 결과는 어떤가. 일부 부처와 공기관은 예산 불용액이 넘쳐난다. 남은 예산을 12월에 집중 사용하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9월부터 집행이 이뤄진다. 이듬해 예산 삭감을 피하기 위한 관행이 반복된다.

12월 여의도 국회가 2020 예산안을 포맷해 주길 바란다. 중이 제 머리를 깎을 순 없다. 어느 부처 장관이 자진해서 예산 삭감을 얘기하겠는가. 부처 산하 기관을 신설하고 조직과 정원을 늘리는 수장이 칭송받는 게 현실이다. 국회의원은 5년 후, 10년 후 대한민국을 책임지는 위치다. 당면 과제도 중요하지만 미래 한국의 운명을 책임져야 한다. 이를 위해 대한민국 발전에 필요한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정치사회적으로 심화된 갈등을 해소하고, 국가의 연속성을 제고하는 예산 집행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각 이해집단 간 갈등이 최고조를 보이고 있다. 보수와 진보 간 정치적 진영 갈등은 물론 청년과 기성세대 간 세대 갈등도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산업적으로는 혁신성장과 전통산업 간 마찰이 평행선을 달린다. 이 때문에 이른바 '갈등해소' 예산 마련이 필요하다.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시대에 필요한 또 다른 형태의 사회복지 확보다. 예컨대 택시 서비스 업그레이드와 이로 파생되는 고령 운전자 및 개인택시에 대한 해결책이 필요하다. 타 산업 역시 마찬가지다. '저출산·고령화' 문제도 난제다. 지속 가능한 국가를 위해 누군가는 해결책을 내놔야 한다. 출생아 수가 40개월 연속 최저치를 기록했다.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지면 국가는 존속할 수 없다.

세금 사용에도 혁신이 이뤄져야 한다. 관성에서 벗어나야 세출 구조가 건강해진다. 지금 이대로라면 2020년에는 연중 보도블록 공사가 진행될지 모른다. 관행에 익숙해진 공무원 사회, 지역구 쪽지예산 챙기기에 바쁜 국회의원 행태가 개선되지 않으면 한국 사회의 미래는 없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사과나무를 심겠다.' 바뤼흐 스피노자의 말이다. 후세를 위해 꿈과 희망을 주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당장 내일 한국의 운명이 다한다고 가정하면 보도블록 교체가 최선의 선택일까.

김원석기자 stone20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