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Image
<이규택 산업통상자원 R&D 전략기획단 신산업 투자관리자(MD)>

지난 7월부터 일본 대 한국 수출 규제가 본격화하면서 국내에서는 대책 마련에 분주했다. 민관공동 특별위원회 설치, 2020년부터 3년 동안 5조원 이상 연구개발(R&D)비 투입,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향상을 위한 국가R&D제도 개선 등 대책들이 산업통상자원부·중소벤처기업부 등과 함께 과학기술혁신본부 중심으로 발표됐다. 특히 소재·부품·장비 관련 예비타당성(예타) 사업인 경우 기존 경제성 평가 기준인 비용편익(B/C) 대신 '소재·부품·장비기술특별위원회'의 검토·심의를 거친 비용효과(E/C) 분석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정책 지정(Fast Track) 확대 및 중복 R&D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중복성 검증은 정부 R&D 평가 절차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으며, 그 관행까지 바꾸겠다고 할 정도로 강한 정책 해결 의지를 나타냈다.

과거 제7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계획(1992~1996년) 안에서조차 '기계류·부품·소재 국산화'가 주요 주제였을 정도로 소재·부품 국산화 이슈는 우리나라 산업 체질의 근본 문제이자 고질화된 난제다. 핵심 소재·부품의 국산화는 정부 R&D 투자에서 언제나 비중 있게 다뤄져 왔다. 특히 최근 5년 동안 전체 정부 R&D 가운데 약 5%가 꾸준하게 투입됐다. 그럼에도 올해 상반기 대일본 무역적자 100억달러 가운데 소재·부품 분야의 적자가 67억달러(약 7조8000억원)로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렇게 누적된 적자 규모가 2014년 이후 5년 동안 763억달러(89조4000억원) 규모에 이르고 있다. 소재·부품 R&D 성과가 시장 성과로 이어지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5조원 이상을 집중 투자한다는 등 강력한 단기 처방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좀 더 장기의 근본 대책 전략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지난 수개월 동안 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부·중기부 등 관련 부처들은 기업·협회·대학·연구소 등 산·학·연·관에 속하는 많은 전문가들과 함께 모여서 해결 방안과 대응책 확보에 매진했고, 다행스럽게도 현재까지는 나름대로 잘 대응해 오고 있다고 자평할 수 있다. 그러나 중차대한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단기 처방을 만드는 것은 피로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미래를 이끌어 가는 중장기의 근본 대안 수립에는 분명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일본은 메이지유신과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화학·기계·소재 분야의 내부 역량을 축적해 왔다. 이번에 문제가 된 불화수소는 세계 시장의 약 70%, 극자외선(EUV) 포토레지스트는 90%가 넘는 시장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내부 역량은 일본 내 대·중소기업 간 탄탄한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수십~수백년 동안 상생 관계를 맺어 오면서 형성된 것이다. 즉 일본에 의지하던 핵심 소재·부품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내재된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 투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AI), 데이터경제, 일본 수출 규제 등 새로운 사안이 나타날 때마다 산발·임시·일회성 회의체를 구성해 정책을 도출하는 방식은 이제 지양해야 한다. 중장기로 우리나라 산업기술 R&D 역량을 높이기 위해서는 R&D 생태계 내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상설 논의의 장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미비한 제도나 규제가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에 기술 전문가뿐만 아니라 시장, 경제·사회, 법·제도 등 전문가들도 함께 참여해야 한다. 산업통상자원 R&D 전략기획단은 미래 비전 제시와 바이오, 미래자동차, 로봇 등과 같은 신산업 육성을 위해 신산업육성지원협의체를 상시 운영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이러한 산업 육성 전략 체계를 통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 사이에서 진정성 있는 협업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규택 산업통상자원 R&D 전략기획단 신산업 투자관리자(MD) gtlee@osp.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