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즘(Chasm). 지형이나 빙하에 난 깊은 틈이란 뜻이다. 이 단어가 유명해진 데는 제프리 무어가 있다. 무어가 쓴 '캐즘을 넘어서(Crossing the Chasm)'은 1991년 베스트셀러였다. 여기서 무어는 혁신 제품에 환호하는 소수와 그렇지 않은 다수 사이에는 꽤 깊은 고랑이 있다고 말한다. 혁신 제품에 환호하는 테키들의 관심이 시들해지면 수요는 벼랑을 만난다. 판매는 멈추고 호평도 옮아간다. 별안간 위기가 크레바스처럼 아가리를 벌린 채 다가온다.

Photo Image
@게티이미지뱅크

실상 지속된 수요란 없다. 무어는 이것을 협곡이나 빙하 크레바스처럼 비유했지만 실상은 파도타기 같다. 한 번 파도를 넘어도 곧 또 다른 파도 사이의 골짜기에 갇힌다. 한때 잘 팔리던 제품에 어느 순간 보틀넥이 찾아온다.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 흥미로운 제안이 있다. 링크드인, 드롭박스, 훌루, 매치 같은 기업을 한번 보자. 이들은 면도날 마케팅의 한 극단이다. '면도기는 싸게, 면도날은 비싸게' 대신 아예 첫 서비스는 공짜다.

드롭박스는 가입만 하면 2GB 저장 공간이 무료다. 친구에게 소개해서 가입하기라도 하면 16GB까지 늘어난다. 단지 여기까지가 '공짜점심'이다. 그다음부터는 프리미엄 서비스라고 불리는 유료다. 링크드인도 웬만한 기능은 가입만 하면 무료다. 뉴욕타임스도 한 달에 기사 10편까지 보는 것은 무료다. 심지어 스포티파이는 음악을 무한정 들을 수 있다. 물론 중간 중간 광고가 끼어들기는 하지만 방법이 있다. 광고가 귀찮다면 이것도 프리미엄 서비스에 가입하면 된다. 음원을 내려받는 것도 프리미엄 서비스다.

비니트 쿠마르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이것을 '프리미엄 방식'이라고 부른다. 보통 고급품이나 할증료를 뜻하는 '프리미엄(premium)'이 아니다. 공짜를 뜻하는 '프리(free)'에다 기존 프리미엄(premium)에서 '미엄(mium)'을 떼다 붙였다. 기본 서비스는 공짜지만 그다음부턴 유료라는 의미다.

정작 쿠마르 교수의 제안이 흥미로운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이 '공짜점심' 방식이 거저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성공 기업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진행형 혁신으로 만들었다. 드롭박스에 이것은 단순히 마케팅이나 수익 모델이 아니다. 매번 더 매력 만점의 서비스를 제공했기에 가능했다. 2008년에 시작할 땐 단순히 파일 백업만 가능했다. 얼마 후 파일 공유 서비스도 시작했다. 그다음엔 이른바 '싱크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런 혁신으로 유료회원 수를 늘려 갔다.

둘째 혁신 지렛대로 삼았다. 실상 어떤 정보도 없을 것 같지만 무료 회원은 가치 있는 정보다. 새 서비스가 매력을 끈다면 유료 전환 비율은 높아진다. 유료 수요도 예측 가능해지고, 그만큼 혁신은 가치가 있다. 한때 스포티파이는 2400만 고객 가운데 무려 4분의 1이 유료 고객이었다. 당연히 시장은 30조원 시총으로 보답했다. 이 정도는 아니지만 2013년 말 뉴욕타임스닷컴은 회원 5400만명에 유료 회원 76만명을 일궈 냈다.

대개 “공짜점심은 없다”고 말한다. 역설이지만 기업에는 여기에 기회가 있다. 당신이 만일 고객 만들기에 고전하고 있다면 한번 생각해 보자. 언뜻 마케팅 방식으로 알고 있던 것이 진행형 혁신이란 나름대로 세련된 고객 만들기는 아닌지. 쿠마르 교수의 프리미엄 방식에 관심이 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Photo Image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